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정종민 성균관대 겸임교수

지난해 11월 시작해 올해 3월 끝난 KBS 대하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은 관용의 리더십으로 고려를 하나로 모아 거란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황제 현종과 그의 정치 스승이자 고려군 총사령관이었던 강감찬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 드라마는 고려의 뛰어난 명장으로 군사적인 천재성과 전략적 사고로 귀주 전쟁에서 대승을 거둔 강감찬 장군의 인격과 능력을 재조명했다.

귀주대첩 중 장군의 목덜미에 무당벌레 한 마리가 기어 가고 있었지만, 그는 무당벌레를 그냥 손으로 집고 바라본다. 비록 전쟁 중이라도 무당벌레 한 마리도 죽이지 않는 강감찬의 인간성을 표현한 것이다.

드라마에서 그려지지 않은 일화도 전해진다. 강감찬 장군이 귀주에서 거란군을 대파하고 돌아오자 현종이 친히 마중을 나가 얼싸안고 환영했다. 또 왕궁으로 초청해 중신들과 더불어 주연상을 성대하게 베풀었다. 한창 주흥이 무르익을 무렵, 강감찬은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다가 소변을 보고 오겠다며 현종의 허락을 얻어 자리를 떴다. 나가면서 장군은 살며시 내시를 보고 눈짓을 했다. 그러자 시중을 들던 내시가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장군은 내시를 자기 곁으로 불러 나지막한 목소리로 "여보게, 내가 조금 전에 밥을 먹으려고 밥그릇을 열었더니 밥은 있지 않고 빈 그릇뿐이더군.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내가 짐작하건대 경황 중에 너희들이 실수를 한 모양인데 이걸 어찌하면 좋은가?"라고 물었다. 순간 내시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만저만한 실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빈이 강감찬 장군이고 보면 그 죄를 도저히 면할 길이 없었다. 

내시는 땅바닥에 엎드려 부들부들 떨기만 했다. 이때 장군은 "성미가 급하신 폐하께서 이 일을 아시면 모두 무사하지 못할 테니 이렇게 하는 것이 어떤가? 내가 소변 보는 구실을 붙여 일부러 자리를 떴으니 잠시 후 자리에 앉거든 곁으로 와서 ‘진지가 식은 듯하오니 다른 것으로 바꿔 드리겠습니다’라고 하면서 새로 갖다 놓는 것이 어떨까?"라고 말했다. 내시는 너무도 고맙고 감격스러워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 후 장군은 이 일을 끝까지 함구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내시는 그 사실을 동료에게 실토했으며, 이 이야기가 다시 현종 귀에까지 들어가 훗날 현종은 강감찬 장군의 인간성을 크게 치하해 모든 사람의 귀감으로 삼았다는 고사가 전해진다.

인격이란 사람의 됨됨이로 도덕적 판단 능력을 지닌 자율적 의지다. 그 사람의 인격은 남을 대하는 말과 행동에서 드러난다. 아무리 지위가 높고 능력이 뛰어나며 재산이 많은 부자라도 인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은 존경받기 힘들다. 인간의 가치는 지위나 능력, 재물이 아닌 인격에 있기 때문이다.

일제 식민지와 동족상잔의 비극을 극복한 우리는 혼란 속에서도 찬란한 역사를 썼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학술, 과학 등에서 눈부신 성장을 이뤘고, 세계는 이것을 한강의 기적이라고 평가했다. 현대사에서 이런 기적을 이룬 나라는 우리가 거의 유일하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갈등’의 함정에 빠져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한국의 사회갈등지수는 OECD 35개국 중 멕시코와 터키에 이어 3위로 평가된다.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위상에 걸맞지 않은 부끄러운 민낯이다.

한 민간 연구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갈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연간 최대 246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갈등이 경제성장과 국민 통합을 저해하는 것이다. 국가 지도자들이 먼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런데도 진영에 갇혀 버린 정치인들이 국민을 분열시키고, 관리들은 방향을 잃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진정한 능력은 인격을 겸비하는 것이다. 인격은 능력이 발휘돼야 할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기 때문이다. 인격과 능력을 갖춘 인재 등용 시스템을 다시 한번 점검하고, 새로 당선된 정치인들은 진영의 울타리를 뚫고 나와 국가와 국민만 생각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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