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에게는 여러 모습이 존재한다. 직장과 가정에서의 모습이 다르고, 사적인 만남과 공적인 자리에서 보여지는 모습 또한 상이하다. 이처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자아가 표출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러나 흔들리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도덕성이다. 비록 100% 순수한 악인이나 선인은 있을 수 없겠지만, 우리는 양심에 따라 선을 지향하며 살아간다. 1958년도 영화 ‘악의 손길’은 바로 그 양심과 도덕성을 저버린 결과를 다룬다.

멕시코 법무부 소속 마약 수사관인 마이크는 미국과 멕시코 접경지역에서 신혼여행을 즐기고 있다. 아내에게 초콜릿셰이크를 사 주려고 이동하던 중 지역 유력 사업가의 차가 폭발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엄밀히 따지자면 미국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지만 국경을 맞댄 만큼 마커스는 외면하지 않고 수사에 함께한다. 

이를 진두지휘하는 행크 경감은 실적만큼이나 촉이 좋은 경찰이다. 한때는 날렵했지만 이제는 나이보다 더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수사에 착수한 행크. 현장을 보고 다이너마이트로 인한 폭발임을 직감하는 한편, 멕시코인 마이크가 사건에 개입하는 것이 불쾌하다. 어찌됐든 빨리 이 건을 마무리하고 싶은 행크는 자신의 직감에 따라 범인으로 의심되는 사내의 집에 증거물을 미리 심어 둔다. 그렇게 조작된 증거물 확보로 손쉽게 용의자를 검거해 일단락 지으려는 순간 마이크가 제동을 건다. 그는 누명을 썼다는 용의자를 두둔하며 행크와 대립각을 세운다. 

이제 두 사람이 본격적으로 맞서게 된다. 마이크는 행크의 부패 전력부터 파헤치는 반면 행크는 마이크의 아내 수잔을 궁지에 몰아넣는다. 행크의 악마적인 용의주도함으로 마약 남용과 살인죄로 기소된 수잔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괴로워한다. 이 모든 악몽을 종식시킬 유일한 길은 행크의 자백뿐이라고 판단한 마이크는 행크에게 등을 돌린 동료를 이용해 자백을 유도하고 이를 불법 녹취한다. 하지만 이 상황을 간파한 행크는 일격을 가하던 중 총에 맞아 사망하고 만다. 상황은 이렇게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는 듯했으나, 차량 폭파 사건 용의자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결국 행크의 직감도 틀리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폭력과 타락의 세계를 씁쓸하게 그린 영화 ‘악의 손길’은 필름 누아르의 고전시대를 마감하는 정점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천재 감독이자 비운의 감독으로 유명한 오손 웰즈가 할리우드에서 작업한 마지막 영화이기도 하다. 그 명성에 걸맞게 영화 ‘악의 손길’은 유려한 촬영 테크닉과 흑백 화면을 채운 로우 키 조명 그리고 불안함을 더하는 미장센으로 비극적인 정서를 극대화한다. 

특히 정의의 수사관인 마이크와 직업윤리를 상실한 행크 경감의 대결은 극의 종반에서 반전을 맞이하며 관객을 혼란에 빠트린다. 행크는 불필요한 증거 조작을 했으며, 마이크 또한 자신의 목표를 관철시키려고 불법을 묵인한다. 그런 마이크의 모습에서 타락한 행크가 겹쳐 보이는 건 지나친 감상이 아닐 것이다. 

선과 악은 경계는 모호한 안갯속에 묻혀 버리고, 한때 경찰다웠던 행크에 대해선 훌륭했지만 동시에 형편없는 사람이었다는 추모로 영화는 끝을 맺는다. 이 작품에는 행크를 위한 변명과 함께 회의론적 시각이 배었다. 그러나 오물 속에 인생을 흘려보낸 책임은 자신이 아닌 그 누구에게도 물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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