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최원영 인하대학교 프런티어학부 겸임교수

저주에 가까운 듯한 거친 막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총선은 끝났고 당선자들이 결정됐습니다. 선거운동 과정에서 드러난 후보자들의 언행을 보면서 예쁜 딸을 두고 여신(女神)들이 벌인 질투와 암투가 어떤 참혹한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를 알 수 있는 ‘쌍바위 고개’의 전설이 떠올랐습니다.

지리산 쌍바위는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두 개의 바위를 말하는데, 하나는 암벽이 온통 얽어 있는 ‘마마 바위’와 만삭이 된 여인의 모습처럼 아랫배가 불룩하게 나온 ‘삼시랑 바위’가 그것입니다. 「뒤주 속의 성자들」(김윤덕)에 이 전설에 관한 글이 있습니다.

어느 날 예쁘게 생긴 여자아이를 본 마마신은 자신도 그런 예쁜 여아를 갖고 싶었습니다. 아이 엄마는 생산의 신인 삼시랑신이었습니다. 마마신은 어떻게 해야 자신도 그런 예쁜 딸을 가질 수 있는지 궁리하다가 한 가지 계략을 세웁니다. 아이가 마마에 걸리게 한 것이죠.

그러자 삼시랑은 마마를 찾아가 아이의 병을 고쳐 달라고 애원했고, 마마는 낫게 해 주는 대가로 그 아이보다 더 예쁜 아이를 자신이 낳게 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삼시랑은 당연히 수락했습니다.

얼마 후 마마신에게 태기가 있었는데도 아이의 병이 호전되지 않자 삼시랑은 마마신에게 따졌습니다. 그러나 삼시랑을 믿지 못하던 마마는 자신이 딸을 낳았을 때 고쳐 주겠다고 말합니다. 이 말에 삼시랑도 자기 딸을 고쳐 주지 않으면 마마의 딸이 늙은이가 되도록 배 속에 둘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이렇게 서로를 믿지 못해 으르렁거리는 사이 마마신의 배가 점점 불어났는데도 해산할 낌새는 전혀 없었습니다. 삼시랑은 딸의 일그러진 얼굴뿐 아니라 살이 썩어 들어가는 것을 보며 안타까워했고, 마마신은 자신의 배 속 아이가 울고 뛸 때마다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어떤가요? 두 여신의 질투가 만들어 낸 비극이 요즘 정치권 행태가 빚어 낼 우리의 미래 모습이 아닐까 우려됩니다. 무언가에 대한 강한 소유욕은 질투를 낳고, 질투는 거친 언쟁을 벌이게 되며, 거친 언행은 감정까지 상하게 해 도저히 협업할 수 없는 관계로 이어집니다.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오직 나만이’라는 탐욕은 사람을 키우지 못하게 합니다. 나보다 더 나은 경쟁자가 생기면 그들을 배제할 온갖 음해와 계략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해서야 어떻게 더 나은 나라를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지배자와 지도자는 전혀 다른 용어입니다. 지배자는 저주의 말을 토해 내지만, 지도자는 희망의 언어를 말합니다. 지배자는 보이는 곳에서만 일하지만, 지도자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일합니다. 지배자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을 가차 없이 징계하지만, 지도자는 자신에 대한 비난을 오히려 성장의 계기로 삼습니다. 지배자는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을 드러내려고 섬뜩한 칼을 내보이지만, 지도자는 필요할 때가 아니면 칼을 내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지배자는 화술에 능하고 지도자는 경청에 능합니다. 사람들의 말을 들어야만 그들이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무엇 때문에 아파하는지를 헤아릴 수 있을 테니까요.

「엉뚱한 수다」(앤소니 드 멜로)에 링컨 대통령의 일화가 나옵니다.

링컨이 보병연대 이동을 명령하자 이 소식을 들은 국방부 장관 스탠턴이 대통령의 명령이 잘못됐다며 그 명을 따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대통령을 ‘멍청한 링컨’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이 말을 전해 들은 링컨 대통령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스탠턴 장관이 그랬다면 그것은 맞는 말일 거요. 그는 거의 틀린 판단을 한 적이 없었소. 그러니 내 명령을 연기하고 결과를 지켜보겠소."

대단한 인격입니다. 신념이나 의견이 다른 사람들의 말, 심지어 비난까지도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링컨 대통령의 태도에서 품격 있는 지도자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링컨과도 같은 지도자의 품격 있는 태도를 당선자들의 향후 4년 동안 의정활동에서도 많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다시 한번 당선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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