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동
이강동

정치·외교·군사·경제·문화·체육 등 각 분야 사회 인사 중 인천이 고향인 분들을 인천의 인물로 선정해 시민들에게 널리 홍보한 적이 있다. 인천시민으로서 자부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을 테다. 선정된 분 중에는 정치인 조봉암이 있다. 평화 통일이라는 정치철학을 가지고 활동하신 분이다. 

조봉암 동상을 건립하자는 주장도 있었다. 인천에서는 20년 전부터 자유공원에서 있는 맥아더 동상을 놓고 진보와 보수 단체들이 모여 철거하자, 보존하자는 대규모 논쟁을 벌였다. 전국적인 큰 뉴스였다. 논쟁이 있을 때마다 황해도도민회는 맥아더 동상은 보존해야 한다며 궐기대회를 했다. 그리고 조봉암은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하며 일각에서 동상 건립을 반대했다. 

지난 2월 16일 경향신문 광고문에 조선공산당을 창당한 조봉암은 친일파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1941년 12월 23일 매일신보를 보면 일본군 승리를 위해 157원(지금 환산으로 수천만 원)을 기부했다는 것이다. 신문을 확인해 보니 ‘적성의 헌금과 헌품’ 기사에 인천 경동 0 봉 0 휼병금 157원 기부라는 내용이 있는데, 기사가 흐릿해 검증이 필요해 보였다. 

매일신보에서는 개성박물관장 시절의 고유섭 기고문도 볼 수 있었다. ‘정창원(쇼소인) 어물 배관기(일본 황실유물전 참관기)’라는 기고문에 천황·황후 각하, 일본 황국신민의 충량된 복종심, 일본 제국의 광영이라는 문구들이 있다. 일본인들이 모여 국민총동원연맹이라는 단체를 결성한다. 총독부 관변단체였다. 소위 내선일체라고 해서 일본과 조선을 일체화하자는 목적으로 결성한 단체다. 결성 취지는 일본 황도와 일본 건국의 대사명 실현, 황국신민 함양, 일본에 충성심 함양, 일본정부 정책 실행, 신사참배, 창씨개명, 적성의봉(국방헌금·금품 헌납) 등을 우리 민족에게 강압하고 강요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국민총동원 연맹에 가입된 단체 중 녹기조선연맹은 일본·중국·조선 각 지역에 지부가 있을 정도로 큰 규모의 단체다. 인천에서는 일본인이 경영하던 조선매일신문사에서 지부가 결성됐다. 회원가입자 중 인천의 인물로 선정된 분들이 있었다. 훈맹정음 창시자 박두성을 비롯해 김순애, 이헌구, 신정구, 정한, 이률관, 김무배가 있으며 학생부에서는 일본 유학생 시절에 가입한 인천시립박물관장과 국립현대미술관장이었던 이경성, 창영초등·박문초등·인천공립상업고교우회가 있다. 가입 순으로 발표해 더 많은 인천시민이 있을 수 있다. 서슬이 시퍼런 일제강점기 시절 강압과 강요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던 시기의 일들이다. 

일제 초기 강압에 의해 바닷가 마을 만석동 주민들이 용왕신과 산신에게 제례를 올리는 자그마한 사당이 있었는데, 마을의 민속문화들도 말살시켰다. 

일제 때 있었던 인천의 인물로 선정된 분들의 모습에서 시민들 사이에서도 평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일본의 강압과 강요로 내선일체화를 실현시키려는 시절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인천지역 학생들에게도 천황 각하에 충성, 천황 각하의 신민, 국방헌금, 일본에 의한 중국 건설, 일본 국기 달기, 일본군 위문품, 신사참배 등을 강요하고 교육시켰다. 당시 인천부윤 나가이는 초등학교 학생들에게까지 시국에 관한 문제집을 나눠 주며 학생들이 어떠한 인식을 가졌는지 조사하기도 했다. 총독부 관변단체들이 나서 일본 정책 실현을 강요했던 것이다. 일본에 맞서는 3·1 민족운동과 독립운동 활동도 잘 아는 분들이다. 일제의 강압과 강요에 반항할 수 없는 상황에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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