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조순 인천시의회 예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임조순 인천시의회 예결위원회 수석전문위원

국회의원선거가 끝났다. 이번 선거는 21세기 들어 치른 총선 중 가장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선거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권은 유권자가 후보자를 선택하기 위해 꼭 알아 둬야 할 다양한 정책이라는 상품을 보여 주지 못했다. 

거대 양당이 내건 선거 핵심 워딩은 ‘○○ 심판’이었으며, 선거 기간 네거티브 이상을 보여 주지 못했다. 선거가 종반으로 갈수록 극단적이고 험한 말들이 난무하는 장면은 여전했다.

그동안 우리 정치리더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념의 시대는 지났고,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가 가장 중요한 이념이라고 강조했다. 그럼에도 상대방을 향해 좌파 빨갱이, 꼴통 보수 따위의 막말을 한다.

상대방을 향해 날선 정치적 수사를 퍼붓는 정치인들도 소비에트식 국가사회주의나 히틀러의 전체주의인 구시대적 이념이 다시 살아나 우리 현실정치로 부활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테다. 그렇다면 정말로 이념은 도서관에서나 만나는, 죽은 것이 됐는가?

우리는 이념을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사상’이라고 정의한다. 이 정의에 입각해 "현재 우리는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삶 전 영역에서 신자유주의라는 단 하나의 이념에 포획됐다"는 필자의 주장은 지나친 과장일까!

경쟁은 효율성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수단으로 모든 영역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국가의 경제성장을 위해 사회적 권리가 축소되며, 공동체를 보호해야 할 법치는 개인의 재산권을 지키는 데 우선하는 것이 우리 시대의 세태(世態)가 됐다.

1990년대 초 미국 정치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의 종말」이라는 책에서 소련식 사회주의와 서방의 자본주의 경쟁은 서방 세력의 완전한 승리로 끝났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이데올로기 전쟁의 종전이었고, 이념 논쟁은 구시대 유물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우리 정치인들이 이야기하는 철 지난 이념 이야기는 여기에 머무른 듯하다.

후쿠야마 주장대로 이념전쟁에서 패퇴한 소련식 사회주의 이념은 사라졌다고 치자. 그러나 지난 시절 서방의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몰라볼 정도로 다른 옷으로 바꿔 입고 신자유주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삶에 거대하게 뿌리내렸다.

192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신자유주의의 뿌리는 오스트리아 사민당과 독일의 바이마르공화국에서 나타났던 ‘총체적 국가’라는 사회국가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돼 히틀러의 전체주의와 스탈린의 국가사회주의를 상대하면서 성장했다.

사회적 위험에서 국가 보호를 내세우는 정치와는 반대로 신자유주의 국가는 시장을 구축하고 국가의 지나친 규제와 통제 위협으로부터 시장을 보호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국가는 민주주의보다 경제가 우선하도록 공적 권력을 사용한다. 또 신자유주의는 자유사회를 위협하는 모든 것, 즉 경제적 평등, 환경, 페미니즘, 문화 영역에서 요구 사항을 관철하기 위해 투쟁하는 정당, 노동조합, 사회운동 등을 위협으로 본다.

자본주의 황금기라고 하는 ‘복지국가’ 시절에는 힘을 쓰지 못하던 신자유주의가 1980년대 초반 레이건과 대처의 시대를 거쳐 글로벌하고 거대하고 지배적인 이념으로 자리 잡았다. 영국·독일·프랑스 등 사민주의 전통의 정당들도 ‘제3의 길’ 등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케인즈주의의 포기, 긴축정책, 감세정책, 임금억제정책 등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권리 축소를 단행했다. 

이렇게 해서 이른바 좌파의 신자유주의 글로벌리즘이 유럽에서 전 세계로 확대됐다.

신자유주의가 전 세계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로 받아들여지는 동안 경제·사회적 불평등은 19세기 이전 수준으로 확대됐고, 공동체를 지탱하는 법과 제도는 경쟁과 효율성이라는 신자유주의 무기(武器) 앞에 추풍낙엽이 됐다.

아담 스미스는 ‘독점’을 인간이 경제생활을 하고 발전시키는 데 가장 경계해야 할 현상 중 하나라고 봤다. 우리는 ‘신자유주의 이념 독점’의 시대를 사는 건 아닐까! 이제는 우리 사회가 어떻게 조직되고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과 대안을 만들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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