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자 살피는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연합뉴스
책자 살피는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연합뉴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 시행 1개월을 맞은 일선 학교 현장이 혼선을 겪는다. 처리 절차가 복잡해지고 기간도 늘어난 데다, 업무 분담 효과도 없기 때문이다.

14일 기호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경기도교육청은 올해 새 학기부터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를 도입·운영 중이다. 학교폭력 조사 절차의 공정성과 전문성을 강화하고 교원의 업무 부담을 덜어주려는 취지다.

25개 교육지원청에서 활동할 전담조사관은 공모를 거쳐 모두 506명을 위촉했다. 2일 기준 도내 학교폭력 사안 1천278건을 이들에게 배정했다.

전담조사관제를 시행했지만 일선 학교 현장에서는 볼멘소리가 잇따른다.

우선 시행 한 달여 만에 24명이 그만뒀다. 현재 전담조사관은 482명으로, 1인당 평균 2.7건을 처리하는 셈이다. ‘개인 사정’이라며 그만둬 명확한 이유는 알지 못한다는 게 도교육청 설명이다.

전담조사관제 시행에 앞서 "학교폭력 사건을 맡을 바에는 편의점 아르바이트가 낫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담조사관이 받는 수당이 1건당 최소 15만 원에서 최대 40만 원에 불과해서다.

도교육청은 20만~40만 원의 수당을 책정했는데, 학교폭력 관련 학생 수나 사안에 따라 차등 지급한다. 최저 금액을 기준으로 피·가해 학생 수가 많거나 학교가 서로 달라 조사관 활동 범위가 넓으면 더 주는 형식이다.

학교폭력 처리 절차는 오히려 복잡해지고 기간도 길어졌다.

학교폭력은 사건 인지 즉시 피·가해자 분리와 같은 초기 개입과 긴급 조치를 한 뒤 48시간 이내 교육청에 보고해야 한다. 이후 교육청이 배정한 전담조사관이 피·가해 학생과 면담 일정을 조율해 조사하는 데 평균 3~4일 걸린다. 조사를 마친 전담조사관은 14일 이내 조사 결과 보고서를 학교와 교육청에 제출한다.

학교는 보고서를 토대로 전담기구를 구성해 자체 종결을 결정하거나 교육청 학교폭력심의위원회로 넘긴다. 학교폭력심의위는 최종 결과를 다시 학교에 통보한다.

학교폭력 사안이 학교에서 전담조사관으로, 다시 학교를 거쳐 교육청으로 보내진 뒤 최종 결과를 받는 꼴이다. 기존에는 학교에서 조사 후 처리 여부를 결정한 뒤 교육청 학교폭력심의위로 넘겼다.

한 교사는 "전담조사관 보고서가 없으면 이후 절차 진행을 못하고 마냥 기다려야 한다"고 토로했다.

지난달 오산시 A초등학교에서는 전담조사관이 조사 보고서를 교육청에만 전달, 학교 쪽에서는 전담기구 구성과 같은 절차를 진행하지 못한 채 시간을 낭비했다.

학교폭력 조사 절차를 시작하면 피·가해 학생이 화해를 해도 학교 쪽에선 이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평택시 B고등학교는 전담조사관 조사 후 피·가해 학생이 화해를 해 분리 조치를 해지하려 했지만 조사 보고서가 없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교원 업무 부담 완화 효과도 없다는 지적이다. 또 다른 교사는 "피·가해 학생의 진술 확보와 같은 최초 사실 확인, 전담조사관 일정 조율, 전담조사관과 피·가해 학생 면담 때도 동석 등 오히려 신경 쓸 부분이 더 많다"며 "업무 부담 완화와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고 했다.

도교육청은 제도가 정착한다면 혼선을 줄이고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제도 시행 초기라 일부 학교에서 혼선이 발생할 수 있지만 학생에 대한 정서 지원,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안 조사 등 학폭 전담조사관 제도의 장점이 크다"며 "제도 정착을 위해 학교 현장과 적극 소통하겠다"고 했다.

구자훈 기자 hoon@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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