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이경엽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부총재

역사 공부를 하다 보면 조선시대 중·후반기 ‘홍대용’이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서양 문물을 적극 받아들인 장본인으로 소개된다. 「조선왕조실록」에 단 한 차례도 이름이 언급되지 않을 정도의 미관말직이었지만 북경을 다녀온 후 새로운 서양의 과학사상에 심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서른다섯 나이에 ‘지천설’을 설파하며 조선시대 수학·천문학 등에서 가장 뛰어난 과학사상가로 추앙을 받았다. 

특이한 점은 홍대용보다 먼저 지천설(지구는 스스로 돈다는 이론)을 주장한 사람이 있었는데, 이 역시 고을 군수를 지낸 성리학자 김석문이다. 김석문은 자신이 쓴 책 「역학도해」에서 여러 행성들이 태양 주위를 궤도를 따라 돌 뿐만 아니라 지구도 남북극을 축으로 1년에 360번 자전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이런 훌륭한 과학사상은 제대로 전파되지 못했고, 관심을 끌지도 못했다. 서양에서 신의 입지를 위협했던 사상과 달리 당시 지배계급 조선의 성리학자들은 그냥 지구가 돌든 하늘이 돌든 신경 쓰지 않았다. 천문 개념에 대한 단순 방치였다. 

단군신화를 공부하며 AI 시대 홍익인간 개념을 정리하면서 당시 동북아를 지배한 우리 선조들은 낮에는 농경과 수렵, 밤에는 천문을 연구하고 공부한, 지극히 동양적인 현자들의 무리였다고 본다. 사서삼경을 꺼내들 필요도 없이 우리 신화는 "널리 인간세상을 유익하게 만들어 가자"는 5천 년 전 사회적 자본을 가졌었다. 

대학에서 아주 얕은 수준의 서구 위주 금융경제, 식민제국 시대론, 종속이론 등을 공부하며 느낀 점은 개인 생존에 대한 본능과 아름다운 사회에 대한 동경이었다. 32년간 은행 재임 시절 외국계 경영진에 ‘아름다운 경영(Aesthetics)’을 주문하며 실제 그들을 행동으로 이끌어 낸 경험 사례 몇 가지도 있었다고 자부한다. 물론 ‘아름다움’이란 말의 통속성 탓에 뒤에서 쑥덕거림은 들었지만 쉽게 생각하는 우리나라 은행 경영의 후진성 폄하를 온몸으로 막은 기억들이 새로워진다. 

그렇게 은행 문을 나서면서 처음 만난 인물이 ㈔글로벌녹색경영연구원 최근영 (전)원장으로 기업 대표이사와 대학 겸임교수(재무경영박사)를 하며 인천지역 CEO아카데미를 총괄 진행 중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는 ‘녹색’으로 ‘아름다운’ 삶의 본질, 가치체계를 바로 세우고 싶다며 내게 5천 년 전 사회적 자본 홍익인간을 근간으로 지역 인간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신뢰, 상호 도움, 협력 등의 가치 창출로 사람과 사람 사이 네트워크와 연결, 사회적 상호작용, 지역사회 문화 등을 발전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함께해 보자고 했다. ▶글로벌 ▶녹색 ▶경영 이 세 마디에 모든 게 담긴, 그야말로 항아리에 담긴 달처럼 아무 조건 없이 손 내밀며 응한 게 13년 전 이야기다. 

당시 녹색(綠色)이란 단어를 택한 것이 마치 10년이 지나 ESG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를 것으로 예견이나 한 듯 그렇게 녹색정신은 10년 넘게 우리 사회에 기업 경영의 방향성을 제시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디지털 시대에 아날로그적 녹색이란 화두가 어울리느냐?", "어차피 세상은 천지인(天地人)과 진선미(眞善美)로 돌아가는 게 아닙니까? 홍익적(弘益的) 본질과 이치, 근원으로 기업 경영을 해 나가자는 다짐이지요." 마치 도교(道敎)선문답하듯 그렇게 주고받았다. 몇 해 전 발간된 녹경원 10년사 기념 제호 ‘10년에 100년을 녹색가치로’라는 메시지가 이 땅에 내리꽂히듯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과연 녹색이 어떤 함의(含意)를 가져야 하느냐에 대해 깊고 넓게 생각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게 던진 첫 과제, 화두 그것을 풀어가는 데 10년이 그렇게 흘렀다. 녹색을 단순히 ‘청정’과 ‘순수’로만 풀어낼 것이 아님을 미리 내게 알려 준 것이다. 그러면서 녹경원의 슬로건인 ‘작은 실천, 녹색 가치’가 즉석에서 만들어졌다. 녹색을 환경에 대입시키기도 버거운 판에 ‘크고, 넓은’ 정신문명으로 인문과 고전, 역사를 바탕으로 하는 근본과 가치를 주문한 것이다. 

"천년기업을 꿈꾸며 시작한 사업도 결국은 문명정신, 인문정신이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말이라고 했었지만 2010년 8월 그의 기업 R&D센터(인천시 연수구 송도동 7의 8)는 ‘녹색가치’의 본산으로서 뿌리를 내리게 된다. 그러면서 지구환경과 인간 생존이라는 거대 담론에서 기술과 기능의 실용화도 바람직하지만 결국 녹색은 미래 가치와 사회적 문명자산이라고 믿었다. 

이제 그는 건국신화 ‘홍익인간’을 내세우며 전 세계에 대한민국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ESG는 금융·실물자본이 아닌 정신자본이며, 시대와 인간을 통찰한 새로운 가치와 사상으로 ‘K-홍익ESG’ 뿌리를 내리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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