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이렇게 사람을 때릴 수 있는 지 너무 무섭고 비참하고 죽고 싶습니다. 의심과 감시를 받고 맞을 줄 꿈에도 생각못했어요.삶의 의욕도 없고 제 자신의 정체성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구축한 한국 여자 쇼트트랙 국가대표로 활약중인 한 선수의 절규는 폭력으로 얼룩진 여자 쇼트트랙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한다.

체벌 수위를 훨씬 넘어선 심각한 구타와 언어 폭력, 철저한 사생활 감시는 밥먹 듯이 행해졌다는 게 빙상계의 공공연한 사실이지만 이를 알고도 성적에 대한 높은 기대감을 가진 빙상인들은 이를 묵인해 왔던 게 사실.

그러나 에이스 최은경(한체대)을 비롯한 주축 선수 6명은 코치진의 끊이지 않는 폭력을 견디지 못했고 끝내 지난 3일 태릉선수촌을 벗어나는 집단 이탈사건으로 누적돼 온 분노를 폭발시켰다.

`국내 대표 선발전이 올림픽 금메달 따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태극마크를 다는 것은 10대 위주의 어린 선수들에겐 영광스러운 일.

대표팀 안에서도 선수간 서로 치열한 내부 경쟁을 벌여야 `라이벌'이고 코치진에 항기를 들면 불이익을 받을 게 뻔하지만 상상을 뛰어넘는 폭력은 그들을 하나로 묶었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던 무단 이탈이라는 집단 행동을 불러왔다.

이를 두고 항간에선 `나태하고 나약한 선수'라는 비난이 쏟아졌지만 이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 역시 각종 국제대회에서 세계 최강의 명성을 쌓아온 선배들을 잇기 위해 강도높은 훈련과 합리적 수준의 체벌을 감수하겠다는 의지도 갖고 있고 어느 종목보다 강한 훈련량을 자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표팀에서 이뤄진 심각한 폭력은 체벌 수준을 훨씬 넘어섰고 쉬는 시간조차 철저한 감시와 통제로 어린 마음은 큰 상처를 입어야 했다.

이탈에 가담했던 한 선수는 "하루 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느니 차라리 운동을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수 없이 했다. 가장 소중하게 아끼던 스케이트를 이제는 혐오하게 됐다"며 그 동안 감내했던 고통의 일면을 토로했다.

또 지난해까지 대표선수로 뛰었던 한 선수도 "지난 시즌 5차 월드컵 때 변천사 선수가 경기 후 무려 1시간 가량 엉덩이와 머리를 맞는 걸 보고 회의를 느껴 대표팀에서 나왔다. 여전히 그 코치 밑에서 배우는 후배들이 불쌍하다"고 말했다.

심각한 폭력이 선수들의 집단 이탈사건으로 수면 위로 떠오르자 빙상계도 자성의 목소리가 높다.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기 위해 어느 정도 체벌이 불가피하다는 의견도 있지만 `성적 지상주의'에 내몰려 선수들을 심각한 구타에 방치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

첨단과학 시대에 여전히 구시대적 악습에 젖어 선수들을 `인권의 사각지대'에 더 이상 머물게 해서는 안된다는 게 양식있는 빙상인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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