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민족 최대 명절 중 하나인 설은 구한 말인 1895년 양력이 채택되고, 일제가 신정을 강요하는 정책을 쓰면서 지위가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구정을 진짜 설로 여기며 이를 지켜온 국민 대다수가 신정을 따르지 않으면서 이중과세 논란이 불거졌고 결국 1985년 `민속의 날'로 지정된다.

이후 1999년 `설'의 명칭을 되찾음과 동시에 사흘간 연휴키로 결정돼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설은 우리 민족 고유의 풍습으로, 조상들이 설을 맞아 한해의 다복을 기원하며 즐긴 다양한 민속놀이에 대해 알아봤다.

 

◇연날리기

연날리기는 일년내내 즐길 수 있는 놀이지만 정월에 특히 성행하게 된 이유는 이때

   
가 일년 중 연을 날리기에 가장 적합한 바람이 불기 때문이라고 전해진다.

연날리기가 일반 백성들에게 널리 보급된 시기는 조선 영조시대라고 알려져 있다.

우리 조상들은 연을 띄울 때 `송액영복'이란 글자를 써 붙였는데 이는 질병이나 사고, 나쁜 액운은 멀리 사라지고, 복을 기원하는 마음에서라고 한다.

신분과 연령의 구분 없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하며, 다른 사람과 연실을 서로 부벼 먼저 끊어내는 연싸움이 일품이다.

◇자치기

1980년대까지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놀이였지만 현재는 거의 사라졌다.

너른 마당이나 골목에서 긴 막대기로 짧은 막대기를 쳐 그 길이를 재면서 노는 놀이다.

`조선의 향토오락'에서는 척취(尺取)놀이, 척타(尺打) 등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의 자치기라는 용어는 20세기 초반부터 사용된 것으로 전해지며 지방에 따라 `메뚜기차기', `오둑테기', `토끼방구' 등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자치기 도구 중 긴 막대는 `채', 짧은 막대는 `알'이라고 하며 공격하는 편을 `포수', 수비하는 편을 `범'이라고 부른다.

땅을 길쭉하게 파 알을 여기에 얹어 채로 알을 멀리 날리거나 알의 끝을 채로 쳐 올린 것을 다시 쳐서 멀리 보내는 방식으로 놀이가 진행된다.

이때 수비가 날라오는 알을 손으로 잡으면 공수가 바뀐다.

◇제기차기

엽전이나 구멍이 뚫린 금속을 질긴 한지나 천으로 접어 싸 동여 맨 다음 여러 갈래로 찢어놓은 것을 발로 차는 놀이다.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오래 전 중국에서 무술을 연마하기 위해 고안된 `축국놀이'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있다.

민속학자들은 조선시대 들어 한자어 `축국'에 우리말 음을 넣어 `적이'라고 불리다가 현재의 제기로 변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한발로 몸을 지탱하면서 다른 발로 제기를 땅에 떨어뜨리지 않고 차야하기 때문에 신체 단련이나 인내심 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된다고 해 요즘에도 즐겨 하는 놀이다.

◇투호

항아리 같은 곳에 화살을 던져 넣는 놀이다.

투호는 본래 중국 당나라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국시대 때부터 유행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궁중과 조정의 고관들이 기로연(조선시대 70세 이상 원로 문신들을 위로하고 예우하기 위해 봄과 가을에 정기적으로 국가에서 베푼 잔치) 때에 여흥을 즐기기 위해 투호를 했다.

경기는 항아리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져 화살을 손으로 던져 더 많이 넣는 편이 승리하는 방식이다.

이 놀이는 오늘날 민간에 전승돼 오지 않는 놀이 중 하나지만 몇 년 전부터 명절 때 고궁 등에서 열리는 행사에 등장, 매체에 소개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팽이치기

겨울에 아이들이 땅이나 얼음판 위에서 하던 놀이로 아래쪽이 뾰족하고 위는 평평한 팽이를 돌려 가는 막대기에 헝겊 등을 달아 만든 채로 쳐서 오래 돌리는 놀이다.

먼 옛날 도토리나 상수리처럼 둥글고 길쭉한 물체를 돌리기 시작한 데서 유래했다는 설, 당나라 시작돼 삼국시대 들어 우리나라에 전해졌다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고마'라는 이름으로 성행하다 우리나라에 역으로 전해졌다는 설도 있다.

팽이는 여러 가지 형태로 변형되면서 최근까지 어린이들에게 매우 인기 있는 놀이로 인기를 끌고 있다.

◇윷놀이

민속놀이 중 아직까지 일반인들이 가장 널리 즐기는 대표적인 놀이다.

정초에 온 가족이 모여 놀거나, 이웃끼리 동네 마당에 모여 윷놀이를 했다.

윷놀이는 기원이나 유래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삼국시대에 이미 성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윷놀이 용어인 도, 개, 걸, 윷, 모의 어원도 부여의 관직명에서 나왔다는 설과 동물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도는 돼지, 개는 개, 걸은 염소, 윷은 소, 모는 말을 뜻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윷의 종류는 어른 손의 한 뼘 길이의 가락윷 또는 장작윷이 있고, 새끼손가락 크기의 밤윷, 은행알로 만든 은행윷, 콩알이나 팥알을 이용한 콩윷 등이 있다.

◇쌍륙놀이

장기와 윷놀이의 특성이 혼합된 놀이다.

백제시대 때부터 즐겼던 놀이로 조선시대 화가 신윤복의 민속화에서도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인도지방에서 처음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쌍륙은 동쪽으론 중국,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전해졌고 중동지방을 거쳐 유럽과 아프리카까지 전파되면서 나라별로 방식에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현재에는 방식을 통일해 세계선수권까지 개최된다고 한다.

방식은 두 사람이 각각 주사위 2개와 자기 말을 15개씩 일정한 방법으로 판 위에 배열한 후 주사위 2개를 던져 나온 숫자만큼 자기 말을 이동시켜 판을 먼저 돌아 나가야 이기는데 도중에 상대의 말을 잡거나 못 가게 막는 등 서로 견제할 수 있는 것이 매력이다.
   

▲ 박원규(78.인천시 연수구 옥련동)

“일제 강점기부터 해방을 거쳐 70년대까지는 보릿고개가 있던 시절이라, 명절하면 떠오르는 것은 무엇보다 `풍요롭게 먹을 수 있는 날'이었다는 기억이야.”

올해로 78세가 되는 박원규 할아버지는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 `모처럼 배부름을 느낄 수 있는 중요한 때'로 예전 설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이처럼 오랜만의 배부름에서 오는 기쁨은 가난하지만 서로 나누려는 이웃과 친척, 가족들의 정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옛 설 명절은 가난했지만 나누며 살아가는 우리의 공동체 문화를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그야말로 부족했지만 정이 넘치는 행복함 그 자체였지.”

“`부엌에 8촌이 난다'는 말 들어봤어?”

“알 리가 없지. 명절이 되면 8촌까지 함께 모여 부엌에서 일하는 모습이 흔한 데서 유래한 말인데, 친척들끼리 부엌에서 어울려 일하며 서로의 돈독한 우애를 느꼈다는 뜻이야.”

“또 차례가 끝나면 2인용 상에다 음식을 놓고 고운 수를 놓은 상보로 덮어 이고 다니면서 이웃들과 나눠 먹는 전통도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설이라는 게 해가 바뀌고 나이 먹는다는 의미 말고는 없고, 미풍양속은 거의 사라졌다”며 아쉬워했다.

“젊은 사람들을 보면 차례도 뒷전이고 놀러 다니기에 바쁜 것 같고…”

“전에는 온 집안 어른들 찾아다니며 세배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도 많이 없어졌고…”

“그나마 이웃끼리 친척끼리 모여 윷놀이 하는 것 정도가 남아있다면 남아있는 풍습이지.”

박 할아버지는 “세월이 흐르면 모든 것이 변하는 게 인지상정이지만, 우리민족 고유의 `정' 문화만은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며 “젊은이들이 좀 더 전통문화에 관심을 가져달라”고 당부했다.
        

이종만기자·yjm@kiho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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