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이 년 되었나? 여기 파기 시작한 거?”

“아냐, 삼 년 다 돼 갈 것 같은데.”

“그럼, 임기 내내 중앙동 도로만 파헤쳤다는 말 아닌가?”

“꼬부랑길이 되기는 했어도 이제 진흙탕 누더기 길 신세는 겨우 면했네.”

“이 사람아, 이래야 중구가 관광지가 되고 문화의 거리가 되는 거 몰라?”

며칠 전 인천시 중구 중앙동 한 식당에 저녁을 먹으러 가면서 일행들의 하던 대화였다. 2년이었는지 3년이었는지, 그 오래고 오랜 `도로 파헤치기'가 마침내 끝나 가려는 참이었다. 여섯 명 중 네 명이 여기 토박이고 셋은 아직도 중앙동 근처를 못 떠나고 있었으니, 그 불편하고 진력나는 도로 파헤치기의 세월을 용케 지내온 감회와 탄식이 어린 대화였다.

구도심이라고 불리는 인천의 옛 중심지 중구, 그 중구의 중심 신포동과 중앙동. 이제는 낙후와 황폐의 대명사가 되어 버린 이곳을 다시 개발해 활기를 찾으려는 데 까짓 2년, 3년이 무어 긴 시간이어서 불편을 못 참을 것인가. 이제 문화의 거리가 되어 은성했던 그 시절을 다시 되살리려는 찰나에 무어 쓸데없이 탄식의 말을 내뱉는단 말인가.

아무튼 그날의 대화는 `관이나 시민이나 양쪽 다 참으로 무던했다'는 엉뚱한 말로 끝이 났다. 하수도 토관을 묻느라고 파고, 도시가스관을 묻느라고 파고, 다시 전선 지중화 공사 때문에 파고, 얼마 있다 수도관 교체로 또 파고, 파고, 파고를 뱃심 좋게 밀고 나간 관(官)의 무던함과 열 번을 파헤쳐도 무슨 단체 하나 나서서 말 한 마디 하지 않는 그저 묵묵한 중구 시민들의 무던함!

그러나 다음날 다시 중앙동 길을 지나며 문득, `무던한 세월은 이제부터 정작 다시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그야말로 구도심인 까닭에 노폭이 좁아 인도와 차도를 굳이 구분해 설치하기가 어려운 곳이 이곳인데, 이번에 과감히 차선을 줄여 인도를 넓혔기 때문이다. 또 어떤 가로는 인천을 상징하는 파도 형상이라면서 인도를 구불구불 휘어 놓아 마치 부잣집 정원처럼 꾸며 놓았다. 그 길 모양이 어찌 보면 운전면허 시험 S코스를 연상시키기도 한다. 바로 이 한껏 모양내서 만들어 놓은 인도가 머지않아 보기 싫은 주차장이 될 터이기 때문이다.

구도심의 몰락은 좁은 도로와 주차장의 부족이 그 원인이라고 공언하는 관(官)이 차도를 줄이고 대신 인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런 인도 만들기는 이미 신포동에서 `주차장화'한 실패를 본 바 있는데도 재현되고 있으니….

일부 신포동 터진개 길은 역시 노폭이 좁아 인도와 차도의 구별이 없었는데 이번 지자체장이 온 뒤로 알록달록한 인도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런데 결과가 어떤가. 사람은 쫓겨 내려와 외길 차도로 걷고 거꾸로 상가 점포주의 차와 고객의 차, 상품 운반차 등은 모조리 인도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통행이 오히려 전보다 더 불편해졌다는 게 이쪽 사람들 이야기이다.

결국 중앙동의, 그 인내의 `파고, 파고, 또 파고'의 결말 역시 이렇게 끝나려 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지역 언론이나 시민단체는 스스로 재갈을 물고 있는 것이다. 시민 혈세를 들여 없던 인도를 만들고, 그 위에 사람이 아닌 차가 올라가 앉아 버젓이 주차하고 있는 나라. 그런 기막히고 무던한 풍경. 이것이 `문명하고 문화가 있는' 인천 중구의 모습인가.

관광지 개발, 문화의 거리 조성은 이렇게 순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알록달록한 타일과 보도블록으로 개인 주택 정원 꾸미듯 마음먹은 대로 간단하게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런 구불구불한 넌센스들을 바로잡아 줄 사람들이 전문가들인데 그들은 또 다 어디 갔는가. 그리고 고작 이런 것들이 인천시가 제시한 인천 구도심 재개발 사업과 연관이 있는 것인지….

김윤식/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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