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알려진 많은 역사적 사실들은, 그동안 역사학적 방법론을 통해 그 나름의 평가와 해석이 정립되어 있다. 하지만 그 중 일부 과거의 사실들은, 또 다른 잣대로 해석하다보면 사건의 본질이 달라져 보일 수 있는 개연성이 있다. 즉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입장을 바꾼다거나, 독재와 민주의 입장을 바꾸어서 평가하다보면 더욱 그러하다.

역사가가 과거의 사건에 대해 객관적으로 평가해 우리의 역사과정을 체계화하고, 그 속에서 민족의 장래를 희망적으로 밝히는 기능을 하였으나, 지나치게는 우리의 역사를 도식화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을 것이다. 물론 이와 같은 작업을 이끌어 내기 위한 전문적 소양을 갖추기까지 긴 연구의 시간을 필요로 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전문적 훈련을 쌓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미 우리 사회의 정보량은 엄청난 상태에 있기 때문에 개인이 직·간접으로 경험한 사례만 가지고도 어느 정도의 역사해석을 부가할 수 있게 되었으며, 거기에 집단의 이해가 결합되면 기존에 인식되어진 해석에 대한 부정도 얼마든지 가능하게 되었다. 단지 문제는 한 가지 특이한 사실만을 가지고 전체를 대비한다든가 본인이 경험한 사례를 마치 모두가 공감하는 것처럼 생각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역사 자체가 지배와 피지배, 주류와 비주류, 독재와 민주, 종교와 과학 등 많은 부분에 대립적 요인들로 구성되어 왔고, 각기의 집단 내에서도 수많은 갈등요인들이 얽혀 복잡다단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때문에 특정 사건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서 진행되는 인간 군상들의 이합집산이 마치 예정되어 있었던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해서, 부분 부분에 있어서는 역사에 있어서도 운명적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그렇기에 대립적 입장을 모두 포용하는 중용적 역사해석은 회색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지배자의 입장에서 보면 농민들의 집단적 움직임은 농민의 난이요,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무능한 정부의 가렴주구에서 탈피하려는 농민 항쟁 즉 봉기인 것이다. 사관(史官)은 난이냐 항쟁이냐의 여부를 결정해야 했고 사마천은 이런 신성한 작업을 위해 붓을 꺾지 않고 궁형을 당하는 수모까지 감내했던 것이다.

억압의 사회에서 자유로운 사회로 진입해 가는 과정에서도, 보수와 진보의 지분 여하에 따라 역사적 사실의 재해석의 속도가 조절되는 것은 그 시대의 숙명일 수밖에 없다. 혁명이냐 쿠테타냐, 8·15 해방이냐 광복이냐 하는 용어의 선택도 결국은 역사적 사건에 대한 해석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그 속에 명분과 당위성, 자율과 타율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이나 집단의 지향점을 보여주는 주제어와 같은 것이다. 5·16혁명이냐 군사정변이냐의 문제가 민감하게 대두되는 것도 5·16에 대한 관점이 함축적으로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역사적 사실이 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진실이 얼마만큼 노출되어 있고, 비호받고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그리고 그 사실을 평가하는 사관(史官)의 엄정함에 따라 변화할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한 시대를 이끄는 주체는 교체되기 마련이어서 역사적 사실은 수정·보완·재해석될 수밖에 없다. 선조실록이 있고 또 한편으로는 선조수정실록이 있는 것이 이를 말해준다. 따라서 역사의 해석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한때 자연도태와 생존경쟁을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하려는 역사해석이 생겨났었는데, 생존경쟁을 개인간 뿐 아니라 계급이나 국가, 민족과 인종에까지 확대 적용해 적자생존보다도 오히려 열자도태(劣者淘汰)를 강조하고, 전쟁의 필연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사회의 진보를 위해서 우수한 소질을 타고난 자만이 생존·번성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단종(斷種) 등을 통해서라도 인간을 개선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미국에서 일어난 흑인배척운동과 단종법, 그리고 제2차세계대전 중 나치스 독일이 행한 유대인 배척, 대량학살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였던 것이다.

이같은 역사의 해석이 특정의 목적에 따라 무비판적으로 경도되면 엄청난 재앙이 뒤따른다는 교훈이기도 하지만, 역사해석이 시대에 편승해서도 안 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먼 훗날 우리의 후손들이 현재의 우리를 어떻게 평가할지를 생각한다면, 역사의 본질을 직시하는 지혜를 가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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