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의 감독과 배우 중 국내 관객들에게 가장 잘 '먹히는' 사람은 누구일까? 몇몇 강력한 경쟁자들은 분명히 있겠지만 아마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톰 크루즈가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이 '마이너리티 리포트' 이후 3년 만에 다시 힘을 합쳐 만든 영화   '우주전쟁'(War of Worlds)이 7일 국내 관객들을 만난다.
   
오랜 기다림 끝에 뚜껑을 연 이 영화는 팬들이 기대했던 대로 입을 쩍 벌어지게 할 만한 엄청난 스케일과 스필버그 특유의 SF적 상상력으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영화가 거대한 우주 로봇이나 전체가 불타는 도시의 모습만을 담고 있는것은 아니다. 외계인들에게 쫓기는 인물들이 겪는 스릴은 감독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도 유머가 넘치며, 혼란을 겪는 지구인들에 대한 묘사는 '그럴듯 함'에서 오는 SF 영화보기의 재미를 관객들에게 유감없이 선사한다.
   
영화 속에 등장하는 외계인은 감독 자신의 옛 작품 'E.T.'처럼 다정한 존재가 아니다. 갑자기 나타나 지구인들을 공격하는 외계인들은 딱히 뚜렷한 이유도,  목적도 없어보인다. 그저 인간들을 무차별적으로 죽이고 잡아갈 뿐이다.
   
부두 노동자인 주인공 레이(톰 크루즈)는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인물이다.일에 대한 대단한 욕심도, 미래에 대한 큰 꿈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레이는 부인(미란다 오토)과도 이혼해 아이들과 떨어져 혼자 살고 있는 처지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어느 평범한 주말. 재혼한 전 부인은 주말여행을 위해 레이에게 사춘기의 아들 로비(저스틴  채트윈)와 어린 딸 레이첼(다코타 패닝)을 맡긴다.  레이와 아이들 사이의 거리감은 꽤나 커 보인다. 아들은 가난한 데다 무책임해 보이는 아버지를 못 마땅해하고 딸도 헤어져 산지 오래된 까닭에 아버지를  어색해한다.
   
갑자기 수십 차례의 번개가 내리치고 땅에서 다리 세 개가 달린 괴물 로봇이 튀어나온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사소한 일로 다투던 순간에 발생한다.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던 이 괴물은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며 전 세계를  활보하고,  레이는 아이들과 함께 사람들의 피난 행렬에 동참한다.
   
영화 속 외계인은 흔한 방식으로 하늘에서 유에프오를 타고 나타나지 않는다. 
괴물 로봇은 이미 인류가 생기기 전부터 땅속에 묻혀 있던 것, 이미 수천만년  전부터 공격이 계획되었을 것이라는 설정으로 외계인의 공습은 한층 더한  공포를  담고있다.
   
'화성침공' 혹은 '인디펜던스 데이' 등 외계인의 침공을 소재로 한 다른 영화와 달리  '우주전쟁'의 주인공은 외계인과 당당하게 '맞짱'을 뜨는 영웅이 아니다.  당장 옆에 있는 가족들의 걱정에 두려워하는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영화는 외계인의 치명적인 약점을 파악해 이 땅에서 몰아낸 뒤 미국 국가를 들으며 감동을 강요하는 식의 영웅담을 담고 있지는 않다.
   
이보다 감독이 영화에 담고 싶었던 메시지는 가족애인 듯하다. 영화의 중심  축은 아버지가 아이들과 함께 가는 피난길이며 에피소드도 대부분 그 과정에서 나온다.그동안 소원했던 아이들과 아버지의 관계는 회복되고 결국 살아남은 가족들에게  아버지는 영웅이 된다.
   
이런 줄거리 때문에 관객에 따라서는 가족애라는 주제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고 외계인과의 한판  승부를 기대하고 극장을 찾은 관객들은 다소 애매한 결말에 실망을 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지난 몇년간 입에서 저절로 감탄사가  흘러나올 만큼의 스펙타클을 보여준 영화가 얼마나 있었을까? 감독 특유의 상상력과  엄청난 스케일의 스펙터클에 빠져 두시간여를 보내는 것은 부인할 수 없이 즐거운  경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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