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얼마만큼 인정을 받느냐의 여부는 사람들간의 관계를 우선으로 하는 인간사에 있어 중대한 문제였고, 그 평가의 결과인 영예 혹은 불명예가 개인과 집단의 상호 갈등을 조장하기도 했지만, 그 모든 것도 시대에 따라 평가가 달라짐으로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 훈구·외척의 시대가 200년을 지속했지만 우리의 역사는 사림(士林)에게 좀더 후한 역사적 평점을 내리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새 시대에 대한 갈망과 비전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림들이 ‘권귀화’하면서 전개한 후일의 정치역정과 관련해 보면, 과연 그들에 대한 평가가 전대의 훈척과 비교할 때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단언하기 어렵다.

           진실은 외면할 수 없어

최근 과거 서슬퍼런 시절에 남발했던 훈·포장에 대한 정리가 있었다. 암울했던 시기에 파생됐던 ‘사태’가 ‘민주화운동’으로 명예회복된 것과 비교해보면, 이러한 결정이 왜 이리 지체되었는지에 대해서는 나름대로의 복잡성이 있었겠지만 역사에 있어서의 평가란 결국 진실을 외면할 수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우리에게 일깨워 주는 사례라 하겠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적 평가가 현재의 역사를 통해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닌 것을 보면, 우리가 왜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가 있다.

인간의 일상을 그대로 모아둔 우리들의 역사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적 구분을 굳이 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유비쿼터스의 시대인 현재에도 공자나 소크라테스가 생활하던 시대의 어록들이 존재한다. 미래를 예견하려 할 때에도 그 첫 발은 과거의 사례를 우선적으로 고찰토록 하고 있어 역사는 미래를 비춰주는 거울이라 일컫고 있다. 역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인간군상을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다양한 장면들을 재현시키고 있으니, 역사를 배우고자 하는 것은 곧 미래를 볼 수 있는 혜안을 갖고자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왕의 남자’가 1천만 명의 관객을 돌파했다고 한다. 희극화한 연산군은 지금까지의 잣대로 보면 아직도 폭군의 대명사이고, 구중궁궐 속의 그는 아첨배 몇 몇과 질투많은 여성의 치맛폭에 둘러싸여 ‘금삼의 피’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조선왕조 최대의 패륜아로 만들어졌다. 쿠데타에 성공한 중종반정의 핵심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의도적으로 그렇게 부정적으로 몰아갔고, 국왕으로서의 누려야 할 치적(?)은 혼란한 사회상과 문란한 사생활의 부각으로 여지없이 퇴색됐다. 과도하게 말하면 평가의 객관성도 상실됐지만, 주도권을 쥔 자의 평가가 정의라는 오류도 범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타인에게서 인정을 받고 싶어한다. 본인의 의지와 역량만큼 가족이나 사회 또는 국가로부터 보다 좋은 평점을 받으려 애쓰고 있다. 그리해서 존재의 의미뿐만 아니라 성취에 대한 보상도 기대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과에 따라 사회적 대접도 자연스레 달라지는 것이다.

취업난뿐만 아니라 조기퇴직이라는 현 사회의 구조속에서 감내하기 어려운 경쟁이 현대인을 불안케 하고 있다. 성호 이익은 당쟁이 발생하는 이유를 관직은 적고 양반은 많은 것에서 찾았다. 그래서 당파간의 쟁탈전은 더욱 극심해 질 수밖에 없었고, 불요불급한 관직의 수가 늘어 ‘위인설관’케 되는 것이며, 동료간의 과도한 경쟁을 유발해 인정까지 메말라가게 한다고 했다. 오늘날의 우리들도 무관하지 않은 이야기이다.

            자신의 행위에 냉정한 고민해야

상호 부조를 통한 건전한 경쟁이란 용어가 점차 구호에 불과해져 간다고 할지라도, 아직 건전한 상식으로 이 세상을 움직이는 다수가 있다. 주어진 기회에 최선을 다하면서 묵묵히 일하는 다수가 그들이고, 눈앞의 명리를 좇기 위해 이리 저리 배회하는 얄팍함을 암묵적으로 주시하는 것도 그들이다.

나에 대한 평가는 나를 기억하는 모든 이들에게서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언제나 따라 붙을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구에게 어떤 평가를 받느냐도 중요하지만, 나의 행위가 사회적 정의와 부합되는지의 여부에 대한 냉정한 고민이 우선돼야 한다. 나의 역할이 크든 작든 그것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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