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야당의 중진 국회의원이 같은당 소속 주요당직자들과 함께 동아일보 측과 기자 간담회를 가진 후 노래방시설이 있는 방으로 장소를 옮겨 술자리를 이어가다가 동석한 여기자를 성추행한 사건이 있었다. 당시 위 의원은 여기자를 뒤에서 껴안고 가슴을 만지자 그 여기자가 항의하며 그 자리를 뛰쳐나갔고 함께 있었던 참석자들이 항의를 하자 그 의원은 술에 취해 음식점 주인인줄 알고 착각해 실수를 저질렀다고 사과를 했다고 한다. 여론으로부터 의원직 사퇴압력을 받고 있는  그 의원은 그후 잠적한 상태이다.

             성 관련 갈등은 인류 역사와 함께 시작

사회의 지도층 인사들의 이와 같은 행동은 흔치 않은 일이 되어 버렸다. 이와는 성격이 다르기는 하지만 최근에 어떤 교도관에게서 성추행을 당한 여성재소자는 자살을 기도했고 결국 사망한 사건도 발생한 바 있다.

도대체 이 같은 성추행사건은 끊임없이 일어나는 것일까? 신(神)이 만든 피조물 중에 인간처럼 신에 근접한 피조물이 어디 있겠는가? 신은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서로 다른 남성과 여성으로 만들었다는 주장이 있다. 신은 인간이 오로지 신에 대해서만 관심을 기울여 신과 같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막고 신에게만 절대적인 복종을 하도록 하기 위해 꾸준히 이성(異性)에 대해 관심과 집착을 가지며 서로를 사랑하고 때로는 미워하는 일로 자신들의 생의 대부분을 소비하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만일 인간에게 하나의 성(性)만 존재한다면 누가 자신의 외모를 가꾸려고 노력을 할 것이며 권력을 잡고 재산을 모으려고 안간 힘을 쓸것인가 ?

인류 역사의 중요한 부분의 뒤편에는 남녀관계가 중요한 인과관계로 필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역사를 파악하는 중요한 잣대 중 하나로 양성(兩性)의 관계를 지적하는 역사관도 있으리라고 감히 단언해 본다. 이와 같이 성(性)과 관련된 갈등은 인류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인류의 역사가 계속되는 한 역시 계속될 것이지만 그와 같은 갈등 중 어느 정도까지 사회공동체에서 허용되는 것인가만 시대적으로 차이가 있을 뿐이다.

동물의 경우에는 수컷이 종족보존의 본능으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기도 한다. 이 때문에 인간의 경우에도 성적인 갈등으로 인한 지탄의 대상이 되는 것이 남성의 숙명임에는 틀림없다. 그 이전 우리의 부모시대에는 여성의 미덕은 참고 견디는 것이었고 남성에게는 특히 성에 관한한 무척 관대한 편이었다. 영웅호걸은 주색을 겸비해야 한다는 이야기나 나비가 꽃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는 등의 논리로 남성중심의 성을 옹호해온 것도 사실이다. 당시에는 남성이 여성에게 수작을 거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인식되어 왔다. 이와 같은 것을 보고 자라난 지금의 중년의 남성들은 관대한 성에 대해서만 알고 있었고 그와 같은 관대함이 지금의 사태에 일조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세상은 변해 여성의 지위가 남성과 동등하게 아니 혹은 더 이상으로 존중되는 사회로 변하고 있으며 성(性에) 관해서도 여성은 피동적이거나 성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시대는 지났다. 남성들은 그런 수작조차 걸 수 없는 암울한(?) 시대에 살고 있다. 여성의 입장에서 수작을 거는 남성에게 호감이 있는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수작을 건 남성은 바로 성희롱이나 성추행범으로 지탄의 대상이 되어 그 동안 자신이 쌓아온 대부분을 잃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성을 인생의 동반자로 대우해야

성에 관해 남성과 여성간의 인식의 차이는 뚜렷하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세태의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 남성들이 이 같은 일을 되풀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에게 연민의 정마저 느끼게 된다. 앞으로 남성들은 여성들이 단순한 성의 대상이라는 생각은 버리고 그들을 인생의 믿음직한 동반자로 대우하고 그들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야만 모든 것을 잃지 않고 멋진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가 그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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