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남은 여러 유형의 인물 중에서 특히, 위기 상황을 적극적인 자세로 극복하고 국가에 괄목할만한 업적을 남긴 사람을 우리는 위인 혹은 영웅이라 일컫는다. 누구나 한번쯤은 살아가는 과정에서 이런 역사적 인물의 일대기를 읽고 그들의 삶의 자세를 생활의 지표로 생각했던 적이 있을 것이다. 새삼 강조하지 않아도 역경 속에서 꿈과 이상을 실천해갔던 위인들의 삶을 살펴봄으로써 미래의 이상과 현실의 어려움을 지혜롭게 타개해 나가려는 사고는 중요한 삶의 방법론이다.

그러므로 현재까지도 역사인물에 대한 각종의 <위인전기전집>이 학생들의 교육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독서가 됐고, 심지어 그 지역적 특성과 정체성을 인물을 통해 찾으려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더구나 현 사회의 다양성을 반영이나 하듯이 정치나 스포츠, 연기분야 등에서 활동하는 대중적 인물에 대한 관심이 열풍처럼 번져 청소년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개인의 역할에 대한 지나친 관심과 숭배는 자칫 중세적 영웅주의에 빠져 굴절된 역사관으로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우려도 있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영웅이나 위인전이 종종 등장하고 강조된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예를 들어 한말 애국계몽운동과 일제하 국권회복운동에 헌신하면서 한국사 연구를 통한 민족운동에 앞장섰던 신채호의 경우 최영·이순신·을지문덕 등 국난을 극복한 민족영웅에 관한 전기를 많이 썼다. 그가 “조선 역사상 일천년의 제일대사건”이라 강조했던 ‘묘청의 난’도 현재 그 평가의 시각이 각각임을 감안한다면, 당시 절박했던 시대상황에서 모색된 방법론의 하나임을 알 수 있는데, 그 무렵 그는 역사의 주체를 영웅으로 보는 영웅중심사관을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된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민족주의 사학자인 박은식·문일평 등의 저서에서도 반영돼 있다 할 것이다.

18세기 이탈리아 철학자 비코는 일찍부터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아예 ‘인간의 시대’이전에 ‘영웅의 시대’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했고, 당시 사람들은 이런 영웅적 인간의 활동을 영웅서사시라는 문학적 형식으로 남기기도 했다. 19세기 영국의 역사학자인 칼라일 역시 그의 유명한 저서 〈영웅과 영웅숭배〉를 통해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해 놓은 성취의 역사인 세계사는 근본적으로 보면 거기에서 애써 일한 위인들의 역사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웅이란 특히, 무엇보다도 사상과 정신에서의 영웅”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역사에서 개인의 역량을 강조했다.

그러나 위인의 탁월한 능력과 그의 시대적 환경과의 함수관계는 또 다른 논의의 대상이 됐고, 헤겔의 형이상학적 결정론이나 스펜서의 생물학적 결정론, 마르크스의 유물사관적 결정론 등 각각 시각을 달리하고 있다. 다만, 이들의 공통점은 “소수의 선택된 탁월한 개인들은 역사를 지배하는 근원적 힘이나 필연적 법칙의 산물이며, 따라서 그들의 창의성이나 위대성도 시대와 환경에 크게 제한받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날의 우리도 역사가 탁월한 몇 몇 개인이나 위대한 인물의 활동으로 이루어져 나가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또 대다수인 일반대중에게는 역사적 역할이 부여되지 않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문제에 대해 우리는 역사를 통해 개인과 민중이라는 요인들이 대립적인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어떤 시대에 있어서는 위인이나 영웅의 역할이 두드러진 경우가 있지만, 어떤 사건에 있어서는 민중이 결정적인 힘으로 작용한 경우도 익히 알고 있다. 16세기 독일의 농민전쟁이나 19세기 영국의 차티스트 운동, 무엇보다 1789년부터 10년 간 세계를 뒤흔들어 놓은 프랑스 혁명과 우리 역사 속의 4·19와 5·18 그리고 1894년 갑오농민전쟁 등을 통해 역사적 주체의 실체를 접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고 그 역할과 중요성을 실제 피부로 느끼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1980년대에 들어서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오랫동안 계몽의 대상으로만 인식되어져 온 일반대중이 아직 우리사회의 역사 주체로서의 역할에 정착하지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5·31지방선거를 앞두고 인물의 선정과 역사의 주체가 민중이라는 시험대에 와 있다. 또 한번 선거를 책임지는 주체가 결국 우리 자신인 것을 역사 앞에 느껴야 할 시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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