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

 

아주 특별한 손님이 한국을 찾아왔다. 두 팔이 없고 다리가 짧은 장애인으로 태어났지만 가족과 사회로부터 쏟아지는 편견과 배척을 딛고 영감 넘치는 예술가이자 당당한 모성으로 다시 태어난 영국의 예술가 엘리슨 래퍼(41)와 아들 패리스 모자가 주인공이다. 이들이 내한했을 때 사람들을 놀라게 한 건 매스컴에 공개된 래퍼의 신체적 결함이 아니라 더이상 밝고 환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 누가 감히 그를 장애인이라고 부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한국의 구족화가들은 사회의 무관심으로 생계조차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알고보면 한국에도 래퍼씨와 같은 구족화가들이 적지 않게 활동하고 있다. 정부 지원이 있었기에 예술가의 길을 갈 수 있었다는 래퍼의 말은 아직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생후 6주만에 버려졌던 어린 시절과 힘들었던 결혼생활, 출산,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고뇌와 성취로 래퍼는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다. 장애를 뛰어넘은 모성애는 임신 9개월의 래퍼를 모델로 만든 조각 작품으로 형상화됐으며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전시돼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래퍼는 “장애인의 몸도 비장애인의 몸처럼 아름다울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의 벗은 몸을 대상으로 영상을 만들어내는 작품활동을 계속함으로써 '살아있는 비너스'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며칠 전 장애인의 날이 있었고 또 얼마 전에는 미 슈퍼볼 스타 하인즈 워드 모자가 다녀갔다. 이를 계기로 혼혈아와 장애인 문제가 떠들썩한 사회적 이슈로 제기됐지만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듯 잊혀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든다. 과거에 그런 일을 너무나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이런 문제에 대한 우리사회의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는 작업을 지속적으로 펼쳐나가야 할 때다. 의식의 고양없이 국민소득만 높아진다고 해서 선진국 진입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래퍼는 “장애는 마음에 있는 것이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면 뭐든지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절망과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우리 이웃의 많은 장애인들에게 큰 희망과 위안이 될 것이 틀림없다. 그는 자신이 장애를 극복하고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던 데는 장애인들에 대해 폭넓은 지원을 해 준 영국정부의 역할이 컸다고 말했다고 한다. 우리 정부 당국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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