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3년부터 76년까지 1만1천여 명의 간호사들이 동생들의 학비와 집안 생활비를 지원하기 위해 생면부지의 독일 땅으로 건너갔다. 이들이 처음 독일 땅을 밟던 66년에 우리의 국민소득은 125달러에 불과했고 한강에는 다리 하나가 달랑 있던 시절로 생면부지의 이국땅으로 건너간 간호사들은 월 440마르크(110달러)를 받으면 최소한의 비용만 남겨놓고 모두 조국으로 부쳤다.

일반적인 간호사처럼 차트를 들고 환자들을 간호하기보다 독일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궂은 일을 억척스럽게 하며 '코리안 엔젤'로 불렸던 이들은 어느덧 손주까지 둔 백발의 할머니가 돼 얼마 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독(派獨) 40년 기념행사를 가졌다고 한다.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는 상업차관을 빌려오기 위해 간호사와 함께 독일에 파견한 광부들이 부치는 돈을 담보로 1억4천만 마르크(3천만 달러)를 들여왔으며 이렇게 인력담보를 통해 마련된 차관은 한국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이렇게 간호사들을 파견한 지 40년이 된 현재 우리 간호사들이 다시 외국으로 떠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가난을 탈출하고 국가경제의 한 축을 담당했던 60년대와 달리 지금 간호사들의 외국진출은 월등한 근무조건과 미래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말이다.

양질의 간호사들이 30만 명의 간호인력 부족을 호소하고 있는 미국의 수입정책에 따라 미국행을 겨냥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한국산업인력관리공단도 최근 미국 뉴욕주 100여 개 병원 체인인 세인트존스리버사이드 병원과 협약을 맺고 1만 명의 간호사진출을 계획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의 간호사들이 세계 어디에 있든 국가경제의 한 축으로 또는 자기계발의 관점에서든 '코리안 엔젤'로서의 역할이 기대된다. 〈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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