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탄과 석탄, 숯, 코크스 등의 분말을 뭉쳐서 원통형의 적당한 크기로 만든 고체연료인 `연탄’은 화력이 강하고, 비교적 가격이 저렴해 취사 및 난방용으로, 한국민중으로부터 오랫동안 큰 인기를 받아왔다.
 
우리나라는 유연탄의 생산은 없었으나, 무연탄 매장량은 비교적 풍부했기 때문에 무연탄을 가공해 생산할 수 있는 연탄공업이 일찍부터 시작됐다.
 
1906년 일본에서 최초로 구멍뚫린 연탄이 개발된 뒤 국내 연탄공장은 대한제국 시기에 일본인이 평양에 설치한데 이어 무연탄 자원에 주목한 일본인이 점차 각지에 연탄공장을 설치하게 됐다.
 
당시 국민들은 오래 전부터 임산연료 사용에 젖어왔고, 결국 정부에서 산림훼손 방지를 위한 산림녹화목표에 따른 임산연료 사용의 억제정책에 따라 6·25 전쟁 이후 국산무연탄을 원료로 하는 구공탄의의 사용이 점차 성행, 1957년도에는 서울시민의 90% 이상이 가정용 연료로서 연탄에 의존하게 됐다.
 
이에 따라 구공탄의 수급문제는 당시의 서울시정으로서 최대 행정과제중 하나였다고 한다. 이처럼 1950년대 이후 가정과 학교, 식당, 점포 등에서 취사 및 난방용으로 널리 사용하게 돼 쌀과 더불어 대표적인 국민생활 필수품으로 여겨지게 됐다.
 
그러나 연탄의 가장 큰 결점이자 인체에 치명적인 유독가스인 일산화탄소 발생으로 매년 연탄가스 중독으로 인한 많은 사상자가 나오면서 연탄사용 기피 경향이 점차 두드러지게 나타나며, 석유나 가스를 사용하는 취사 및 난방기구가 일반화 됐다.
 
이 때문에 가정의 연탄 소비량과 연탄생산량이 변화를 보이며, 1983년 약 1천516만t, 86년 2천140만t, 88년 2천233만t까지 지속적인 증가추세를 보였으나 89년부터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이 같은 추세에 반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 IMF 당시부터 지속적인 국내경제 위축과 함께 고유가 시대를 맞으며 `연탄’이 국내 서민경제의 생활필수품으로 자리잡게 됐다.

그러나 최근 한 장에 240원씩 하던 연탄 값에 대해 산업자원부가 2배 이상의 인상 방침과 구체적인 가격 인상폭을 결정할 것이라고 밝혀, 연탄에 의존하던 시설·화훼농가는 물론, 서민경제의 또 다른 근심거리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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