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가 추진하고 있는 만국공원(자유공원)의 창조적 복원 사업의 타당성을 뒷받침하는 기본 논리가 ‘인천의 정체성 혼란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인천을 표상할 도시 경관의 부재, 상징적 장소의 결여’인데 그 자체가 우리의 ‘근대 문화유산’으로서 만국공원이 “인천의 랜드마크였던 건축물이 위치했던 곳으로 우리나라 근대 문물 발신지로서의 상징적 장소”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결국 만국공원은 ‘인천의 정체성 혼란’을 없애기 위해서도 복원되어야 하고 ‘근대문물 발신지요 문화유산’이기 때문에 더욱 우선적 복원의 당위성을 갖는다는 논리이다. 만국공원 주변을 우리나라 근대 문물의 발신지로 보는 것도, 또 그 일대를 우리의 문화유산으로 해석하고 인정하는 태도도 전혀 부정할 것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만국공원을 포함한, 인천을 표상할 도시 경관의 부재가 인천의 정체성 혼란의 한 원인이라는 진단(?)은 그 자체가 더 혼란스럽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체(正體)와 표징(表徵) 또는 상징(象徵)을 혼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정체성의 혼란’이란 해괴한 표현에 이르러서는 말할 것도 없다. 인천이란 도시는, 시민은 무슨 연막(煙幕) 같은 속에서 마술사처럼 정체를 흐린 채 살고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혼란스러운 정체’란 말인가.

그러나 만국공원 복원사업의 진짜 의도는 이 말 뒤에 숨어 있다. 인천대 인천학연구원의 연구팀이 ‘각국공원(만국공원) 창조적 복원 사업 타당성 검토’ 과정에서 “인천의 정수리에 해당하는 응봉산 일대에는 개항 이래의 다양한 역사·문화적 적층이 형성된 장소임에도 불구하고 다양성들은 제거되고 일국적·냉전적 표상만 두드러져 있다는 점이 극복되어야 한다고 보았다.”라고 요약한 내용이 그것이다.

결국 만국공원은 일차적으로 냉전의 주역 맥아더 장군 동상과 한미수교100주년탑이 서 있는 곳이니, 이것들을 헐어내든 옮기든 하자(그것을 극복이라고 표현한 듯하다.)는 의도이다. 그리고 그 자리에 세창양행 숙사와 존스턴 별장을 복원하자는 뜻이다.

그러나 여기서 묻고 싶다. 전자의 두 상징물이 잘못 세워진 것이라면 세창양행 숙사와 존스턴 별장은 새로 복원할 만큼 정의로운 문화유산이란 말인가. 전자가 냉전의 상징이라면 후자는 제국주의 역사의 산물이다. 역사가 후자의 두 건물을 전쟁으로 회진시켰다면 50년 전, 역사는 전자의 동상을 세우게 했다.

“제국주의 유산, 산물도 필요에 따라 보존, 복원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왜 동상과 탑은 두고 볼 수가 없는가. 시인 고은(高銀)의 말대로 우리가 세운 동상이라면 한 세기는 두고 보고, 그때 가서 따지자는 것이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역사이면서 인천의 정체인 것이다.

“만국공원의 복원은 단순히 역사적 유물을 복원해 관광자원으로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서 인천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동시에 경제특구와 항구와 공항 같은 도시 인프라를 기반으로 국제도시로 발전하려는 전략적 지향을 단적으로 보여 줄 수 있다…”

전혀 맞지 않는 말이다. 세창양행 숙사와 존스턴 별장은 이처럼 대단한 역사적 유물도 아니며 새삼 276억 원의 비용을 들여 건축할 건물도 결코 아니다. 더구나 그것의 복원이 인천의 정체성을 구현한다는 말은 그야말로 견강부회요, 어불성설이다. 제 이득 때문에 이 땅에 와 살다 간 외국인의 집을 복원하는 것이 어찌 인천의 정체성을 세우는 일이란 말인가.

또 한 가지. 이 두 건물에 대해 “인천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로 여겼던 인천인들의 기억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말도 어처구니 없다. 인천의 랜드마크였다는 말은 애초 외국인 항해자들의 말이지, 그 당시 한국인 누가 그것을 랜드마크로 여기고 상징으로 치부했다는 말인가.

끝으로, 그토록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지닌 채 60년을 살았다니 시민으로서 심히 부끄럽다. 또 별 의미도 없는 건물들을 복원하자면서 인천의 정체성을 까뭉개도 오불관언하는 인천의 지식사회 또한 암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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