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내린 비가 지난 한여름의 폭염을 단숨에 잠재우고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알려주는 듯하다. 하루가 다르게 하늘은 파랗고, 약간은 쌀쌀한 기운을 느낄 수 있는 바람이 분다. 자연의 신비는 과학으로 무장한 우리를 맥없이 만들어 버리곤 한다. 올 추석은 개천절을 앞세워 징검다리 휴일의 모습을 하고 있고, 각 학교에서는 대체로 이 기간을 학교장의 재량으로 효도방학으로 설정하고 있는 듯하다. 참으로 좋은 일이다. 어차피 교육의 연속성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할 바에는 교육의 다른 목적을 실천하는 것도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한 현상을 집의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처한 일이 생겼다. 자칫하면 우리 가족은-이러한 현상은 비단 우리 가족만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모습일지도 모르지만-올 명절에 본의 아니게 이산가족이 될  처지에 놓였다. 큰 아이는 고등학생이고, 작은 아이가 중학생인데 추석연휴기간을 전후해 아이들의 중간고사 날이 각각 다르게 잡혀 있는 것이다. 중학생 녀석은 추석 전에, 고등학생 녀석은 추석 직후에 시험을 치르도록 되어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큰 아이의 이야기가 명절을 맞는 기쁨보다 씁쓸함을 남겨준다. 당장 연휴 다음 날부터 시험이니 이번 추석에는 자기는 빠지면 안 되겠느냐는 것이다. 연례대로 부모님과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이는 시간을 포기한 것이다. 시험에 대한 부담인 것이다. 이럴 땐 부모로서 무어라 해야 하는가? 자신의 일이 급하기 때문에 한 번쯤 식구들과 모임에 빠지는 것이 그다지 큰 일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왜, 누구를 위해, 효도방학기간을 설정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착잡한 마음이 드는 것은 혼자만의 느낌일까?

적어도 이 땅에서는 누구도 교육전문가가 아닌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우리의 교육은 무엇을 위한 교육인가. 학벌위주의 사회구조, 마치 공부만이 전부이고 공부를 하지 못하면 무슨 죄인인 것처럼 대하는 현실, 무엇하나 우리를 교육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질 않는다. 더욱이 이 같은 교육풍토는 공교육을 불신하고 엄청난 사교육비를 쏟아 붓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가계의 교육비 지출액에서 사교육비가 차지하는 비중(국외교육비 포함)은 2000년 33.0%에서 2001년 36.3%, 2002년 37.6%, 2003년 39.7%에 이어 지난해엔 41.3%로 40%를 넘어서는 등 매년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통계 보고가 나타나고 있다. 비약하면 공교육의 실종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작년 한 해 40%가 넘는 교육비는 국내 8조 원, 유학 8조 원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 정도의 액수는 작년 인천광역시 예산의 몇 배에 해당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세계 1위의 저출산 국가에서 도대체 왜 이렇게 많은 사교육비가 들어야 하는가?

고려를 건국한 태조 왕건은 첫 번째 정책으로 호족세력과의 연합과 타협이라는 당면과제를 해결하고 곧바로 북진정책(北進政策)을 추구한다. 내란의 상태를 수습하고 새로운 왕조를 건국한 왕건이 추구한 북진정책의 명분은 고구려의 계승자임을 자처한 고려가 고구려가 차지하고 있었던 옛 땅을 회복해 이를 계승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북진정책의 내용은 왕권 강화의 일환으로 완전히 장악하지 못한 호족들의 무력적 기반을 와해시키고자 한 것이다. 정략결혼의 방식으로 호족과의 타협을 꾀하며 우리 역사상 공식적으로 가장 많은 29명의 부인을 거느렸던 왕건의 입장에서 호족들의 무력적 기반을 제어하지 못하면 고려 왕실의 운명을 예측할 수 없었던 현실적 급박함을 읽을 수 있다. 당연히 태조의 속내를 파악한 호족들일지라도 이를 반대할 수 있는 명분이 없다는 것이 선택의 여지를 없애버린 것이다.

효도방학을 떠올리며 도무지 연결이 될 것 같지 않던 고려태조 왕건의 북진정책은 왜 떠오르는지 알 수 없다. 그러면서 우리는 아이들을 너무 공부하는 기계로 몰아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공부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면서 그저 끌려만 가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누구나 한 번쯤은 회의를 가져보았을 것이다. 이왕 징검다리 연휴를 효도방학이라고 설정했다면 이렇게까지 아이들을 옥죌 필요가 있을까? 이 명절에 많은 국민들이 대이동을 하는데 시험에 묶인 아이들을 이산가족으로 만들어 얻는 교육적 효과는 무엇인가. 효도방학의 명분이 무엇인가 새삼스레 반문하게 된다. 아이들을 위한 것인가? 선생님들을 위한 것인가? 아이들을 위한 것이라면 비록 약간의 교육 공백이 염려가 되기는 하지만, 아이들은 누구보다 잘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중간고사를 추석 전에 치루는 것이 효도방학의 진정한 명분을 살리는 길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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