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가 없다'라는 표현 중 어처구니는 무슨 뜻일까? 어처구니는 궁궐 추녀마루 끝자락에 있는 흙으로 만든 조각물을 일컫는다.
 
중국 당 태종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는 귀신을 쫓기 위해 병사를 지붕 위에 올린 데서 유래한 것으로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기와장이들이 궁궐을 지을 때 어처구니를 깜박 잊고 올리지 않은 데서 비롯된 말이다.

어처구니는 궁궐 지붕에만 세우는 것이라 서민들의 지붕을 올리는 데 익숙한 기와장이들이 빼먹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왕실에서는 궁의 권위를 실추시킨 기와장이들을 쳐다보며 `쯧쯧, 어처구니가 없구만'하고 혀를 찼다고 한다.

유몽인이 남긴 `어우야담'에 따르면 어처구니는 궁궐이나 도성 성문에 3개에서 11개까지 올라가는데 각각 대당사부, 손행자, 저팔계, 사화상, 마화상, 삼살보살, 이구룡, 천산갑, 이귀박, 나토두 등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림책 작가 박연철 씨가 펴낸 `어처구니 이야기(비룡소)'는 눈에 잘 띄지도 않는 어처구니를 소재로 재미있는 상상력을 발휘한 작품이다.

시시포스처럼 영원한 형벌을 받은 어처구니들을 다뤘지만 비극적이지 않고 해학이 묻어난다. 고구려 벽화의 문양과 단청 무늬, 임금이 입던 옷의 문양 등 우리 전통문화의 요소를 살려낸 그림도 눈길을 끈다.

하늘나라는 말썽꾸러기 어처구니들로 정신이 없었다.

입이 두 개인 이구룡은 잠시도 쉬지 않고 거짓말을 했다. 저팔계는 술을 먹고 천도복숭아 나무를 몽땅 뽑아버렸고 손행자는 상제와 똑같은 허수아비를 만들어 선녀들을 골탕먹였다. 사화상은 연못의 물을 모두 마셔버렸고 대당사부는 사람들이 죽는 날을 똑같이 만들어버렸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민 상제는 어처구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라는 명을 내렸다.

굴비 엮듯이 묶여 상제 앞에 끌려온 어처구니들에게 상제는 사람들을 해코지하는 `손'이라는 귀신을 잡아오면 용서해 주겠다고 한다.

잔꾀가 많은 대당사부는 `손'을 잡을 계책을 생각해낸다. 이구룡은 두 입으로 다른 목소리를 내고 힘이 센 저팔계는 방패연과 청동그릇을 만들고, 사화상은 청동그릇에 물을 가득 채웠다.

손행자에게는 귀신을 꼼짝 못하게 하는 엄나무로 999자짜리 밧줄을 엮으라고 했다. 하지만 말썽쟁이 손행자는 엄나무가 모자라자 귀찮은 나머지 두릅나무로 밧줄을 엮는다.
 
대당사부의 계략은 성공해 `손'은 청동항아리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어처구니들은 손을 연에 묶어 하늘로 띄워 보낸다. 하지만 얼마 안 있어 줄이 툭하고 끊어지고 만다. 손행자가 엄나무 대신 두릅나무를 썼기 때문이었다.

달아난 `손'은 다시 어처구니의 계략에 빠질까 두려워 꼭꼭 숨어버렸다. 상제는 어처구니들에게 궁궐 추녀마루 끝에 올라가 `손'이 잡힐 때까지 사람들을 지키라고 명했다.
 
`손'이 잡혔다는 말은 아직도 들리지 않는다. 물론 어처구니들은 지금도 추녀마루에서 눈을 부릅뜨고 손을 찾고 있다. 다시 한 번 하늘나라를 뒤집어 놓을 말썽을 궁리하면서.

32쪽. 9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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