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3년 스페인 코루냐 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라몬 삼페드로는 22세에 노르웨이 상선의 정비사로 일하면서 세계  49개  항구를 여행했다.
   
3년 뒤 바닷가에서 다이빙을 하다 모랫바닥에 머리를 부딪혀 목뼈가 부러진  그는  전신마비 상태로  30년 간 침대에 누워 죽음을 꿈꿨다. 안락사를 보장받기 위한 소송을 벌인 끝에 그 소송이 유럽 인권재판소까지 올라갔지만 결과는 그에게 성공적이지 못했다.
   
이미 오래전 죽음을 통해 자유를 갈망해온 그는 1998년 안락사를 실행에 옮겼다.7년 뒤 그의 여자친구가 다량의 수면제를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국민의 80% 가량이 가톨릭 신자인 스페인에서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안락사를 주장한 그의 저서가 2004년 출간돼 "삶과 죽음은 인간의 권리인가, 의무인가"에  대해 격렬한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번에 국내 번역 출간된 '죽음은 내게 주어진 마지막 자유였다'가 바로 그 책이다.
   
안락사에 대한 논쟁은 끝이 없다. "생명에 대한 존중감 상실이다", "환자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최후의 방법이다" 등 의견이 상반돼 누구도 쉽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다.
   
라몬은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사는 게 낫지 않냐", "어떻게  사랑하는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두고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느냐"고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글로 대신 썼다.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입에 펜을 물고  글  쓰는 것 뿐이었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삶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당사자의 몫입니다. 아이에게 고통만 가득한 삶을 주지 않기 위해 낙태를 결심하는 여성의 법적 권리는 인정하면서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해방되고자 하는 저같은 장애인의 권리는 인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는 식사와 대소변을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해결해야 했고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세 시간에 한 번씩 자세를 바꿔야 했다.
   
'지옥에서 쓰는 편지'(Cartas desde el infierno)라는 원제처럼 그는 이런 상황을 지옥으로 생각했다. 그의 비참함과 수치스러움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그래도 살아있어 행복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은 그의 생각이 신에 대한 모욕이고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는 증거라며 묵살했다.
   
지인들에게서도 힘을 얻지 못한 라몬은 교황, 국회의원, 목사, 법무부 장관 등 사회지배층 인사들에게 죽음을 택할 권리를 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떠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저는 절망 때문에  죽으려는  것이 아닙니다. 고통을 견딜 수 없어서도 아니고 애정과 사랑이 부족해서도 아니며  권위에 대항하기 위해 항의의 뜻으로 분노를 표출하려는 것도 아닙니다. 제가 사지마비 장애인으로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 유일한 진실입니다."(교황에게 보낸 편지 일부)
   
책 끝에 적힌 라몬의 에필로그는 "나는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당사자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이 어리석은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지?"라는 말로 마무리됐다.
   
책에는 라몬이 지인과 사회지도층에게 보낸 편지, 사랑과 계절 등을 소재로 쓴 그의 시 등이 수록됐다.
   
지식의숲. 김경주 옮김. 320쪽. 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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