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후기 사찰에서 집중적으로 등장하는 불교 공양구로 업경대가 있다. 글자 그대로는 생전에 쌓은 업(業·선과 악을 모두 포함)을 비춰 보는 거울을 앉힌 대라는 뜻인데 대체로 거울은 해태라는 동물이 떠받친 모습을 한다.

해태는 사자와 비슷하나 인간의 상상력이 만들어낸 동물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이마에 뿔 하나를 갖춘 유니콘의 일종으로 화기, 즉 불의 기운을 누르고 인간의 선악을 판별하는 능력이 있다 해서 궁궐 건축물 앞을 장식하기도 하고 업경대 같은 불교 공양구에 활용되기도 했다.

업경대는 사찰에서 집중적으로 활용되기 때문에 흔히 불교의 전통으로 간주되고 있으나 실은 도교신학에 그 뿌리가 있다. 인간으로 변한 사악한 귀신도 거울 앞에 서면 본색을 드러내므로 산중에서 수양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등에 거울을 지고 다녔다는 이야기는 이미 4세기 동진시대 도사인 갈홍의 `포박자'라는 도교교리서에서 발견된다.

해태처럼 상상력이 빚어낸 동물로는 사방을 관장한다는 (청)룡(동쪽), 백호, 주작(남쪽), 현무(북쪽)를 필두로 봉황, 기린 등이 있다. 이 중 백호는 흰색 호랑이로 간단히 생각하기 쉬우나, 실은 호랑이를 모델로 만들어낸 상상의 동물이다.
 
주작과 봉황은 각종 문헌이나 그림 자료 등을 참조할 때 닭, 특히 수닭에서 출발한 `상상의 동물'이며, 기린은 말, 그 중에서도 백마에서 출발한 들짐승이면서도 날짐승이다.
 
이 중 백마는 흔히 상제의 사자(메신저)이기에 천마라고도 했으며, 이에 따라 기린은 백마 혹은 천마와 혼동된 경우가 많았다. 맹자-장자와 거의 동시대에 활약한 것으로 추정되는 기원전 4세기 전국시대 초나라 사람 시자가 남긴 책 `시자'를 보면 기린은 준마의 하나로 거론되고 있는데, 이는 기린이 말의 일종으로 인식됐다는 증거다.

1998년 `아미타'전을 시작으로 매년 두 차례 소장품 특별전을 기획하는 호암미술관이 그 12번째 테마전으로 마련한 `상상과 길상의 동물' 기획전(11월7일~내년 2월28일)은 주제에 걸맞는 상상의 동물들을 모티브로 한 미술품 50여 점을 한자리에 모았다.

보물 786호인 `청화백자운룡문병'을 필두로 19세기 해태 받침 업경대, 17~18세기 청동운룡문운판, 조선 정조~순조 연간에 활약한 임희지(1765~?)의 1817년 작 회화인 노모도 등이 선보인다. ☎02-2014-6552, 6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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