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 가면…생선도 있고…배추도 있고…

어려서 시장놀이를 하면 작은 자판을 펼쳐 놓고 “사세요”, “싸요”를 연방 외치곤 했다.

준비한 종이쪽지가 현금이 됐고 돌멩이가 생선도 됐다가 배추가 되곤 했다.

어머니 손을 꼭 잡고 찾던 시장의 모습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그만큼 재래시장이라 하면 몸빼바지를 입은 아주머니가 국방색 전대를 허리에 두르고 지나가는 아낙들을 향해 흥정을 벌이는 모습을 가장 먼저 떠올린다.

다만 그 재미있던 시장 놀이가 이젠 기억조차 하기 힘든 추억으로 밖에 남지 않고 있다는 현실 외엔.

그러나 `재래시장의 모습, 그게 그거지'란 생각으로 찾은 인천시 남구 주안7동 소재 신기시장과 남부종합시장은 기존에 담고 있던 재래시장의 편견을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입구부터 정돈된 출입문을 시작으로 상점별 같은 규격의 간판, 소방도로 확보는 물론 화재에 대비한 스프링클러까지 대형 할인매장을 온 듯 깔끔한 이미지의 시장이 한눈에 들어온다.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의 결과물이다.

하드웨어가 갖춰지자 상인들 스스로 친절 고객 맞이, 공동 배달 서비스, 자체 봉투 제작, 온라인 쇼핑몰 운영 등 소프트웨어를 개선시키고 있다.

   
 
   
 
양 박자가 맞물리며 전체 매출액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아직 현대화 사업의 성공 여부를 논하기엔 이르지만 적어도 이 지역 어린이들은 시장놀이를 할 때 반듯한 간판 및 세련된 판매 기술을 우선시 할 것이다.

시장에서 만난 주민 김은영(38·여·인천시 남구 주안동)씨는 “예전엔 날씨가 궂으면 유모차를 끌고 장을 보러 다니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다”며 “이렇게 바뀌고 나니 할인마트에 비해 시장에서 쇼핑하는 것이 훨씬 편하고 즐겁다”고 말했다.

# 시장 형성 배경

옛 진흥도자기(현 쌍용아파트 자리) 후문에서 푸성귀 등을 보따리에 싸서 나와 퇴근길 직원들에게 판매하던 상인들이 있었다.

도심개발에 따라 30여 년 전 남구 용현동 등지에서 쫓겨난 철거민들이 지금 신기촌 일대에 대거 유입되며 생계유지를 위해 택한 방법이었다.

입소문을 타고 하나 둘 늘어난 상인들이 아예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했고 지금의 남부종합시장과 신기시장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마치 형제처럼 나란히 골목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이들 시장은 이젠 점포수만 하더라도 총 260여 개가 넘는 규모로 발전해 왔다.

특히 최근에 인근 남동구 구월동 상권이 급속도로 커지며 백화점과 대형 할인마트가 속속 입점, 5군데가 넘게 영업을 하고 있어 시장을 위협하고 있지만 시설현대화 사업 등 자구책 마련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다.

자체 추산 연 매출액 300억 원을 넘어 당당히 대형 유통업계에 맞서고 있는 것이다.

남부종합시장 상인회 한유희 이사는 “재래시장도 대형 마트와 충분히 경쟁할 수 있다”며 “우선은 경쟁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춘 후 서비스 경쟁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비스의 질이 향상되고 쾌적한 환경의 쇼핑 공간만 마련된다면 반드시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시장 둘러보기

   
 
   
 
〈남부종합시장〉

재래시장 현대화 사업의 완료를 통해 고객 유치전에 한 발 다가선 재래시장이 있다.

신기사거리에서 문학경기장 방면으로 넘어가는 길, 쌍용아파트 맞은 편에 위치한 인천남부종합시장이 바로 그곳이다. 국비 27억 원과 자비 3억 원 등 총 30억 원의 예산을 들여 지난해 12월 중순 마친 시설현대화 사업을 통해 남부시장은 현재 어느 때보다 활기가 넘친다.

점포수 146개로 내방 고객 연인원 20만여 명, 총 매출액 200억 원을 넘어 올해는 20%의 신장세를 목표로 하고 있다.

상인회 한유희 이사는 “리모델링 완료 후 고객들의 반응이 좋아 이 같은 목표는 충분히 달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상인회를 중심으로 한 눈물겨운 자구책 마련이 차근차근 효과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남부시장은 봄날을 위한 축제준비가 한창이다. 우선 시장에 들어서는 입구부터 남다르다. 자체 상인들로 구성된 도우미들의 도움으로 손쉽게 주차를 할 수 있음은 물론 잘 정비된 시장 내 풍경이 여느 할인마트 못지 않다.

아케이드 설치로 날씨에 관계없이 쇼핑을 할 수 있고 밝은 조명 덕에 야간에도 얼마든지 물건을 고를 수 있다.

상인들 스스로 소방도로를 확보, 한층 넓은 길을 유모차는 물론 작은 손수레를 끌며 여유롭게 다닐 수 있다. 여기에 재래시장 특유의 사람들 향기가 더해지며 남부시장은 개장 20년이 지난 현재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다.

상인회도 이를 기념해 오는 5월경 시장축제를 계획 중이다. 중소기업청의 협조로 시행할 축제를 통해 지역민은 물론 인천시 전역에 남부시장의 우수성을 알리겠다는 각오다.

열흘간의 축제기간 동안 팔도 먹을거리 장터를 비롯해 상인노래자랑, 깜짝 할인 이벤트, 경품행사 등을 펼친다는 계획이다.

한유희 이사는 “무엇보다 시장 홍보가 가장 중요하다”며 “마케팅 활성화를 위해 시장축제를 비롯해 다양한 홍보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 “인터넷 쇼핑몰 개설을 비롯해 공동 배달서비스 구축 등 고객 편익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를 구상 중”이라며 “상인들 스스로가 남부시장에 대한 자긍심을 가지고 소비자와 만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의지를 보였다.

   
 
   
 
〈신기시장〉

남부시장보다 1년여 앞선 지난 2005년 시설현대화 사업을 마친 신기시장은 현재 내왕 고객 수 인천 1위를 자랑하고 있다. 지난 2005년엔 중소기업청이 주관하는 전국재래시장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며 재래시장의 모범 성공사례로 꼽히고 있다.

남부시장에서 인하대 방면으로 불과 10여 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기시장은 주변에 대규모 빌라단지가 형성되며 어디보다 경쟁력 있는 시장으로 성장했다.

점포 수 120개. 그다지 크지 않은 규모지만 빌라단지에 진입하는 입구에 시장이 자리잡고 있어 지리적 요건이 뛰어난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신기시장은 봉투도 자체 제작한다. 대형 마트처럼 시장 로고가 찍힌 봉투를 제작해 시장 안에서는 그 봉투를 사용한다. 선물용 박스도 로고를 찍어 자체 제작한다. 종종 이벤트를 통해 신기시장 로고가 들어간 장바구니도 증정한다. 또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상거래도 가능하다. 홈페이지 주소는 `singi.incheon.everymarket.co.kr'이다. 아직 온라인 상거래 가능 점포가 40여 개로 미약하지만 점차 늘려 갈 계획이다.

신기시장진흥협동조합 김종린 이사장은 “대형 마트의 경우 납품 단가에 치중하지만 재래시장은 단가는 다소 높을지 몰라도 제품의 질 자체가 다르다”며 “서비스 질만 향상시키면 제품 질이 좋아 충분히 경쟁할 만하다”고 했다.

또 재래시장 상품권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신기시장도 점차 활기를 띠고 있다고 김 이사장은 전한다.

그러나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우선 고객들을 위한 주차공간의 확보가 무엇보다 시급한 실정이다. 신기시장의 경우 이렇다할 주차공간이 전무한 실정으로 빌라단지로 진입하려는 차량이 시장입구부터 엉키며 통행에 불편을 주는 상황을 심심치 않게 목격할 수 있다.

또 상품권 환전에 따른 야간 및 휴일 이용의 불편한 점을 비롯해 신용카드 사용의 문제점, 체계화된 할인행사 등 상인회가 나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김종린 이사장은 “재래시장이 진정한 상권으로 거듭나기 전까지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것은 사실”이라며 “그래도 우리나라 경제의 한 중심에 재래시장이 있는 것은 확실하다”고 말했다.

재래시장이 살아야 지역 경제가 산다는 것이다. 단위 면적당 최대 내방객수를 기록하고 있는 신기시장이 기타 재래시장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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