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 체계가 기존의 번지체계에서 도로명과 건물번호에 의한 방식으로 바뀐 지 20여 일 지났지만 여전히 새 주소로 인한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집배원이 새 주소체계로 인해 업무처리에 곤욕을 치르고 있는 가운데 정보통신부 우정사업본부가 우편물 배달과 관련, 새로운 주소제도가 조기에 정착될 수 있도록 당분간 새 주소와 기존 지번 주소를 병행해 사용할 것을 호소하고 나섰다.

 ▶새로 도입된 주소체계 = 새 주소체계는 지난 5일부터 발효돼 앞으로 2011년까지 기존 주소와 병행되다가 이후 도로명 주소로 일원화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천·경기의 상당수 시·군·구는 도로명과 건물번호 부여 준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사실상 새 주소체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는 상태다.

 또 행정자치부가 마련한 주소 검색 시스템은 이용자가 폭주하면서 접속이 자주 중단되거나 지연돼 네티즌들의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

 ▶영문표기 준비 미흡 = 외국 기업이나 기관과 교류를 하는 법인들은 새로 생긴 길 이름의 정확한 영문표기법을 알기 어려워 당황스러워 하고 있다. 검색 사이트는 물론 길 이름 간판에서도 영문표기를 찾을 수 없는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전모(45·무역업)씨는 “각종 대외자료에 나가는 영문표기 자료를 변경하려고 했지만 정확한 도로 영문표기명을 알 수가 없었다”면서 “90여 년만의 주소체계 전환에 대한 준비가 너무 소홀했다”고 말했다.

 ▶헷갈리는 집배원과 경찰 = 새 주소체계가 시행되면서 누구보다도 일선 집배원들이 죽을 맛이다. 하루평균 3천 통 이상의 우편물을 배달하는 집배원들은 눈을 감아도 떠올랐던 `○○동 △△번지'가 하루아침에 이름도 낯선 `XX길 9', `□□안길 3' 등으로 달라지자 신참내기 시절로 돌아간 듯 주소 외우기에 바쁘다.

 13년 경력의 K(39)집배원은 지난 토·일요일 휴일을 고스란히 반납하고 담당구역의 옛 주소가 어떻게 새 주소로 바뀌었는지 일일이 공책에 적다 파김치가 됐다.

 경찰도 도로명 주소 제도 도입 이후 어디로 출동해야 할지 혼선을 빚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112상황실과 지구대 등의 치안상황판을 도로명 주소 표기로 바꾸느라 분주하다.

 인천지방경찰청 관계자는 “도로명 주소 도입으로 인해 혹시라도 112 긴급 출동에 문제가 생길까봐 특별 출동 훈련 등을 통해 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정사업본부 협조 요청 = 우정사업본부는 최근 새 주소체계로 이 같은 혼란이 이어지자 `신속하고 정확한 우편물 배달을 위한 국민협조 사항'을 통해 새 주소를 쓰더라도 우편번호는 기존 주소 우편번호 체계를 그대로 써 달라고 당부했다. 또 등기·선거·송달 등 긴급한 우편물은 새 주소 뿐 아니라 지번 주소도 같이 병기해 달라고 호소했다. 6자리 우편번호 중 끝자리 3자리는 배달용 번호라 새 주소로 돼 있더라도 우편번호만 있으면 집배원들은 번지수를 떠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우체국 한 관계자는 “새 주소체계의 조기 정착에 보조를 맞춰야 할 정부기관이 옛 체계의 잔존을 당부하는 모양새가 아이러니하다”면서 “그만큼 일선에서의 혼란과 당혹감이 크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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