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평종합시장 입구
# 부평시장 소개

인천시 부평지역에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재래시장이 부평종합시장이다. 시장의 형성 시기는 정확치 않으나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상인들은 입을 모은다.

일제시기 부평역 일대가 개발되면서 자연 발생적으로 인구가 늘었고 노점들이 들어서며 골목시장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본격적인 시장의 면모를 갖춘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 산곡동에 미군부대가 들어서며 부대 PX에서 흘러나온 군수품의 거래가 이뤄진 1950년대.

이 시기 부평시장은 일명 도깨비시장(양키시장)으로 불리며 그 규모를 점차 확대했다. 1970년대에 들어서 시장은 최고의 전성기를 맞이했는데 청과물도매시장이 생기며 인천은 물론 김포, 검단, 영등포 등지에서도 이곳으로 장을 보러 올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부평종합시장 하나로는 주변 상권을 감당키 어려웠고 인근 진흥종합시장 및 부평자유시장이 조성된 계기가 됐다.

현재는 이곳 3개 시장을 비롯해 부평지하상가를 하나로 묶어 일반적으로 부평시장이라 칭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부평시장의 상인조합도 하나로 묶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타 재래시장이 발빠르게 리모델링을 통한 현대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반면 부평시장이 제 자리 걸음만 반복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점은 부평시장은 분명 인천 최대의 재래시장이라는 점이다. 그만큼 찾는 고객도 많다는 의미로 유통업계의 특성상 제품의 회전율이 높다는 것이다.

부평시장상인회 한 관계자는 “3개 주체의 시장 상인들이 모여 발전방향에 대해 고심하고 있다”며 “곧 통합된 형태로 발돋움,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 시장 전경 (1)
# 부평시장 둘러보기

인천시 부평구 부평4동 부평역 일대에서 부평시장 로터리 인근에 몰려 있는 시장을 부평구 사람들은 `부평시장’이라고 부른다.

부평종합시장과 자유시장, 진흥시장 등의 재래시장과 부평지하상가가 한데 어우러지며 형성된 인천 최대 규모의 시장이다.

물론 이 시장들은 별개의 상권을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총 1천500여 개의 상점이 거대한 형태로 몰리면서 각 시장간의 경계를 명확하게 그을 수 없게 되자 이를 통칭 `부평시장’이라 한다.

그 중 부평종합시장은 농축수산물을 비롯해 각종 잡화 등 가정에서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의 대부분을 구입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부평 일대에선 가장 먼저 형성됐고 그 규모도 여느 시장보다 크다.

부평종합시장은 지금은 청소년을 위한 거리로 변모된 `문화의 거리’ 뒷 길을 중심으로 골목시장을 형성하며 시작됐다. 인근 미군부대가 들어서고 부평공업단지의 조성으로 부평역을 이용하는 경인전철 승객이 증가하며 전성기를 맞이했으나 요즈음 모습은 옛 명성을 잃어가고 있는 실정이다.

▲ 시장 전경 (2)
상인들은 재빨리 과거의 재래시장 개념에서 청소년을 위한 옷가게, 패스트푸드, 게임방 등의 새로운 업종으로 전환을 시도했고 결국 기존의 시장터는 새로운 이들에게 넘겨주고 그 주변으로 옮겨가 도리어 시장의 범위가 더 넓어지며 지금과 같은 광범위한 지역으로 시장이 분포하게 됐다.

 부평시장 안에는 1970년대 개설된 부평지역 유일의 청과물 도매시장이 있어 `깡시장’으로 더욱 유명했다. 그러나 지난 1994년 구월농축산물도매시장에서 청과물 도매업무가 시작되며 사라지게 된다.

과일장사를 하는 송규원(72)할아버지는 깡시장(도매업무)를 할 때만 하더라도 물건 값이 저렴해 인근 연수구와 서구, 부천 등에서 소매상인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그는 “20년 전만해도 서울(영등포 등지)에서 소매상인들이 몰려와 줄을 이었다”며 “깡시장이 이전하면서 장사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했다.

당시 용산에 대규모 재래시장이 있었지만 서울사람조차 부평시장의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이곳을 찾았다는 것이다.

현재는 도매시장 역할은 거의 사라지고 소매시장 기능으로 업종이 전환됐다.

따라서 야채, 곡물 등이 주 취급 품목이던 것이 생선은 물론 육류, 식품가게가 들어서며 점차 종합시장으로 변모됐다.

다만 지금도 시장의 한쪽에서 새벽시장이 열리고 있어 인근 김포, 원당 등지에서 야채상인들이 모여들고는 있다. 그러나 예전 같은 북적거림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입되는 물량도 적고 찾는 상인이나 소비자들도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또 지역의 개발로 땅값이 올라 더 이상 농사를 짓는 농민이 감소하면서 예전에 감자를 비롯해 호박, 오이, 시금치 등의 손수 재배한 것들을 조금씩 가져오던 농민들이 현저히 줄어든 것도 깡시장의 퇴색을 부채질했다.

이젠 그 옛날 농사짓던 농민들이 가끔 자가용을 몰고 와 추억을 더듬고 가고 있는 상태다.

재미있는 점은 요즘엔 야채를 판매할 때 상자째 판매하는 이른바 ‘짝떼기’로 거래를 하지만 예전엔 한 단 혹은 낱개로 판매했다는 것이다. 판매시간에 있어 더디지만 마진은 더욱 좋았다고 시장상인들은 입을 모았다.

# 변모하는 부평시장

▲ 시장을 찾은 시민들
부평시장은 일부 구간에 한해 지난 2005년 시설 현대화 작업을 완료했다. 바닥을 개선하고 아케이드를 설치했다. 전기와 통신, 소방시설도 갖추었다. 예전보다 훨씬 깨끗하고 쾌적한 공간으로 변모했으나 상인들은 여전히 경기가 좋지 않다고 한다.

여러 가지 대책에도 불구하고 시장이 활성화되지 않는 것에 대해 상인들은 스스로 이렇게 문제점을 진단했다.

우선 주차장을 제대로 갖추고 있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또 화장실을 비롯해 쉼터, 육아보호실 등 위생 편의 시설이 부족해 대형 유통매장에 비해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특히 장사가 예전 같지 않으며 재래시장 특유의 문화인 ‘덤’과 ‘에누리’가 사라지며 인정이 메마른 팍팍한 시장이 됐다는 것이다.

상인회 관계자는 “재래시장의 활성화를 위해선 시장의 현대화 사업을 통한 각종 편의시설 확충만이 전부는 아니다”며 “예전처럼 정이 넘치고 사람 냄새가 푹푹나는 시장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사장을 찾을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일까. 부평시장은 그간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상인회의 통합을 추진 중이다.

로터리상우회를 비롯해 부평시장상인연합회, 부평시장운영회, 새시장상우회, 중앙시장번영회 등 5개의 상인회가 하나가 되는 통합 상인회 구성을 논의 중이다.

상인회 관계자는 “이미 통합 상인회에 대한 가시화된 방안이 만들어졌다”며 “제2의 전성기를 향해 통합 상인회가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 깡시장이란

깡시장의 ‘깡’은 ‘그것만으로 이루어진’을 뜻한다. 이윤없이 혹은 적은 이윤으로 파는 시장으로 상품의 가격이 가장 싼 시장인 셈이다.

 인천은 동인천의 청과물시장(채미전)인 `인천 깡시장’과 부평역 북쪽의 `부평 깡시장’이 유명했다.

인천 깡시장은 1960년대 말 인구이동에 따라 남구 숭의동 숭의철교 부근으로 이동했고 현재도 몇몇 과일 상점이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숭의깡’으로 더욱 유명했던 숭의동 청과시장과 `부평깡시장’은 구월농산물시장 및 삼산농산물시장이 개장하며 쇠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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