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정부 시절 첫 방송을 시작한 케이블 TV는 10년이라는 시간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기존의 지상파 TV에서는 볼 수 없었던 뉴스, 종교, 역사 그리고 스포츠 전문 채널들의 경우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으며, 이와 같은 채널의 다양성은 정보통신의 발달로 인하여 높아지고 다양해진 시청자의 요구를 만족시켜주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순기능과 더불어 몇몇 측면에서는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으며 그 근본적인 원인으로는 무분별한 방송국의 설립과 열악한 재정 상태라고 할 수 있겠다.

 케이블 TV 시장의 과대성장과 포화상태는 각각의 방송사의 열악한 재정 상태를 한껏 압박하고 있으며 결과적으로 방송사간의 시청률 확보를 위한 과열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시청률은 광고비의 기준이 되며 바로 광고를 통한 수익은 각 방송사의 핵심적인 재원이기 때문이다. 광고수입은 비단 케이블 TV 뿐만 아니라 지상파 방송의 주수입원이기도 하지만 전자의 경우 대부분 그 자본이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시청률을 놓고서 더욱 치열한 경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열악한 경영 상태에 있는 케이블 TV 시장의 현실에서 초래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과도한 시청률 경쟁에서 파생되는 방송의 선정성과 부도덕성이다. 이미 포화상태에 놓인 시장에 뒤늦게 가세한 방송국들은 더더욱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자극적인 소재의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채널고정에 힘쓰고 있다. 토크쇼, 드라마, 쇼 프로그램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성(性)을 상품화 시키고 있고, 급기야 재연방송을 실제상황인 것처럼 조작하면서 언론윤리에 어긋나는 행위도 주저하지 않는다. 케이블 TV 관계자들은 지상파에서 다루지 못한 것들을 다루기에 오히려 참신하다고 생각한다면서 자신들을 정당화시키려 하고 있지만 그 근저에는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의도를 이미 시청자들도 알고 있다는 사실과 특정 소재의 사용이 매일 같이 반복 된다면 참신함이 아니라 진부함이 된다는 점을 망각하고 있는 것 같다. 시청자들은 케이블 TV를 통해 전문적 지식이나 지상파에서 다루지 못하는 다양하고 색다른 주제를 접하고 싶어 하는 것이지 반복되는 선정성과 부도덕적인 방송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전문기관에 의해 조사된 결과에 따르면, '케이블TV의 성적인 표현이 지나쳐 우려된다'는 의견이 51.7%, '시대가 변한만큼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는 의견은 29.7%로 시청자의 절반 이상이 케이블 방송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TV 방송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고, 누구나 함께 즐길 수 있으며 특히 가족단위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점을 고려할 때 이와 같은 결과는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케이블 역시 방송국에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프로그램 편성에 매진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거실에서 가족끼리 TV를 시청하다가 낯이 뜨거워져 서로 말 없이 먼 산을 쳐다봐야 하는 부자연스러운 광경을 연출할 정도의 내용을 방송하고 있으니 방송의 공공성은 논할 단계에도 이르지 못하였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자라나는 어린이들이나 예민한 시기에 있는 청소년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은 방송의 윤리성을 넘어 그 존재의 이유 자체를 부정하는 행위가 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방송내용의 소재가 부적절한 프로그램의 경우 방송위원회로부터 징계를 받고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 가벼운 경고나 주의 혹은 가벼운 벌금으로 그치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후발 방송국들은 징계를 받더라도 너나 할 것 없이 우선은 시청률부터 높이고 보자는 식의 ‘묻지마 편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회사의 이익만을 생각한 행동들은 가벼운 징계를 받는 것이 오히려 단기적으로는 이득이라는 계산으로부터 나온 것이며 이를 근절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송 가이드라인의 설정이 시급하게 요청된다. 보도의 자유를 논의하기에 앞서 방송의 공영성을 먼저 생각할 때 바로 이와 같은 문제의 근본적 대책이 마련될 것이다. 이와 동시에 케이블 방송의 구조적인 문제에도 집중해야 한다. 부족한 재원과 미흡한 시설 그리고 인적자원의 부족 등 케이블 방송사들이 가지고 있는 현실적 제약이 바로 이와 같은 방송의 부적절성을 양산하는 구조적인 문제임을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새로운 해결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케이블 TV는 자사의 방송이 지상파의 방송에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도록 제작 인프라 구축과 다양하고 전문적인 프로그램을 통해 성공한 스포츠 전문방송의 사례를 거울삼아 다양한 소재 개발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미풍양속을 해치는 선정적인 방송에 대해 ‘눈 가리고 아웅’식의 징계가 계속되는 것도 곤란하다. 지상파 TV와 마찬가지로 케이블 TV에 대해서도 엄격하고 단호한 제재조치를 가하는 것이 옳다. 마지막으로, 지나친 10대, 20대 위주의 프로그램 편성을 자제하고, 가족 단위 시청이 가능한 유익한 프로그램의 제작을 꾸준히 한다면 시청률 향상과 광고수입 확보는 자연스레 뒤따라 올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케이블 TV가 시청자의 요구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방송으로서의 제 위치를 찾아가는 길일 것이다. 케이블 방송이 살아남는 길은 바로 공익성과 전문성에 있음을 주지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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