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일하는 즐거움을 때로는 예기치 못한 사건에서 발견하기도 한다.

 2007년 추석을 앞둔 9월 18일. 30대 초반의 한 젊은 여성이 인천지하철 예술회관역에 찾아왔다. 그녀는 역무원에게 지난 8월 31일에 자신이 예술회관역에서 동인천역까지 무임승차를 했다고 고백하며 ‘죄송하다, 용서를 빈다’라고 자필로 적은 쪽지와 함께 그 요금의 30배에 달하는 과징금 3만6천 원을 담은 돈봉투를 놓고 급히 돌아갔다. 역직원들이 그녀의 신분이라도 알고자 했으나 자신의 신분을 끝내 밝히지 않은 채 떠나버렸다.

 과징금 3만6천 원! 1천200원 요금 구간의 지하철을 공짜로 이용한 대가치고는 매우 큰 돈이다. 그리고 당사자가 스스로 찾아와 밝히지 않으면 그냥 묻혀버릴 일이지만 젊은 그녀는 양심을 택했다. 그날 어떤 이유로 무임승차를 했는지 사연은 알 수 없었지만 정직한 시민의 반성과 양심적인 행동을 보니 지하철공사에서 일하는 보람이 새롭다.

 지난 6월경 뉴스에서는 여든을 바라보는 노인이 61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지불하지 못했던 통학열차 요금을 내겠다며 부산역에 찾아와 36만6천 원을 낸 사연이 소개되었다. 노인은 평생 안고 있던 마음의 짐을 내려놓기 위해 찾아왔다며 가난한 형편 때문에 4개월여간 무임승차를 했다고 고백했다. 과징금을 낸 노인은 매우 홀가분하다면서 ‘양심을 지키면서 사는 것이 참된 삶’이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가 가난했던 60여 년 전의 시대적 상황을 십분 이해할 수 있음에도 마음에 남아있던 빚을 갚겠다며 찾아와 정직함의 즐거움을 몸소 보여준 노인의 말과 행동은 많은 시청자들의 기억속에 자리 잡았다.

 인천지하철공사는 지난 7월부터 매표소에서 구입하던 승차권을 자동발매기를 이용해 구입하도록 제도를 개선했다. 처음에 혼란을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빠르게 승차권발매제도가 정착이 되어가는 분위기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끊이지 않고 부정승차자와 관련한 민원이 이어지고 있어 이를 지켜보는 마음 한 켠이 왠지 씁쓸하기만 하다.

 몇 백 원하는 승차권 값으로 인해 도둑으로 몰리고 나서, 혹은 도둑이라는 말을 듣고 기분이 좋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씩 정직한 요금을 내지 않고 지하철을 이용하고 기분좋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종종 눈에 띈다. 나이를 속여 어린이권이나 우대권을 이용하려는 사람, 자신의 양심을 팔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몇몇 사람들이 도리어정직하게 승차권을 구입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러울 때가 있다.

 공사에서 야심차게 역 대합실의 한 켠에 고객을 위해 만들어놓은 도서대 역시 양심없는 사람들에 의해 책들이 나날이 찢기고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행태 때문에 기꺼이 책을 기증하려는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많은 선택을 한다. 일상이 되어버린 지하철을 이용함에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다. 정직할 수 있는 선택, 부정직함을 대가로 작은 이득을 남길 수 있는 선택, 남을 잠시 속일 수 있는 선택, 자신의 양심을 지킬 수 있는 선택 등이 그것이다.

 수많은 양심과 비양심, 정의와 부정의 기회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가는 전적으로 나의 몫이다. 남들이 속임수로 이익을 남기는 선택이 있음을 암시하더라도 정직한 선택을 하겠다는 나의 확신만 있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그렇게 되면 세상의 풍조나 흐름을 탓하지 않아도 되며 변명이나 피곤한 언쟁도 필요없다. 나아가 남을 속이고 사회를 속이고 느끼는 스릴보다는 정직한 선택 뒤에 오는 기쁨도 알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정직한 선택은 그 사회의 신뢰도와 성숙도를 측정하는 거울이다. 그것이 단돈 몇 백 원짜리 승차권이든, 항상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도서든 간에 선택은 우리의 양심과 정직함을 요구하고 있다. 사람들이 양심과 정직함을 어길 경우 당장은 보이지 않겠지만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언젠가 반드시 치뤄야 할 것이다. 신용사회로 자리매김한 선진국처럼 우리도 이제 서로 신뢰하고 좀 더 편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지하철을 이용할 수 있도록 정직함의 기쁨을 누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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