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정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역구 공천이 지난주 사실상 마무리됐다. 양당 모두가 범법자 추방이라는 절대 원칙을 내세워 국회의원 후보자들의 도덕성을 높이고 무능한 정치 거물과 측근을 퇴출시키는 하면 사상 유례가 없는 영호남 물갈이를 단행하는 등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으나 진정한 인적 쇄신을 갈망했던 민의를 충족시키기엔 한참 부족한 공천이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두 정당 모두 정당지도부의 관여를 배제하는 실험적 공천심사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공천 물갈이’라는 강도 높은 인적 쇄신을 단행했지만 공천 후보들의 면면과 공천과정을 되짚어볼 땐 공천혁명으로 평가하기에는 허전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이는 유권자인 국민과 당원의 의사가 철저히 배제된 채 공천심사위원회가 결정한 후보를 찍기만 하면 되는 기형적 공천 구조에 기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보니 “공심위 위원 몇몇이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의 반 이상을 했다”는 비아냥 섞인 우스개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공심위는 또한 이현령비현령식의 모호한 탈락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반발을 자초했다. 또한 개혁공천을 명목으로 물갈이 수치에만 치중하다 보니 “총선 후보 공천에 유권자는 없었다”는 당 안팎의 자조와 실망, 우려감을 안겼다. 이러다보니 무늬만 ‘공천혁명’이라는 비난과 함께 탈락자들이 밀지공천, 밀실공천에 의한 토사구팽을 당했다며 공천 결과에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 당연지사가 되고 말았다. 지난 17대 총선 때는 이른바 정당정치의 민주적 절차 확보를 위한 상향식 공천 방식인 ‘국민참여경선’이라는 제도를 도입함으로써 당원과 국민을 총선의 장으로 끌어들이는 등 진일보의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주인이자 유권자인 국민과 당원은 철저히 소외된 채 명목상의 ‘여론조사 경선’만을 실시함으로써 오히려 인적 쇄신을 갈망하는 민의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선거전은 공천 공방으로 얼룩지고 정책대결은 실종됐으며, 후유증이 곳곳에서 표출됨으로써 자칫 정당정치가 뒷걸음질 치지 않을까 우려되는 상황까지 이르렀다. 구조상 문제점은 차치하더라도 공심위는 옥석을 가려야함에도 공천흥행을 의식, 현역의원 물갈이 폭에만 치중함으로써 전문지식이 풍부한 일부 유능한 다선의 중진의원들을 내치는 우를 범하기도 했다. 공천혁명이라는 미명 하에 공심위가 휘두른 전가의 보도에 엄청난 국가적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불과 열명 내외의 심사위원이 수일 만에 수천 명의 신청자를 심사하는 주마간산식 심사 제도에서도 많은 문제점이 노출됐다. 공심위에 전권이 주어지는 구조상의 문제점 또한 너무도 후진적이고도 비민주적인 요소다. 차제에 대폭적 보완 과정 또는 폐지 여부를 검토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지역구 공천을 마무리 지은 두 정당 모두 비례대표 인선을 놓고서도 심각한 내홍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나라당의 경우, 지역구 공천갈등에 의한 친박 독자정당 및 연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이번 총선에서 또 하나의 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따라서 비례대표 공천방향에 따른 친이·친박계의 반목이 정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역시 비례대표 추천심사위 구성을 놓고 정면충돌한 것과 관련, 공천개혁 의지가 퇴색했다는 호된 질책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당 지도부는 지역구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갈등을 비례대표 인선으로 해소해보려다 공심위의 집단사퇴라는 초강수에 밀려 당초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을 뿐 아니라 자칫 개혁이미지 실추가 몰고 올 파장에도 전전긍긍해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국회 구성에서 비례대표제를 도입한 취지는 직능을 대표하는 신진의 전문 인재를 등용함으로써 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여야 제 정당은 지역구 공천과정에서 꺼질 뻔 했던 공천혁명의 불씨를 유권자, 당원 모두가 공감하는 비례대표 인선으로 갈무리함으로써 공천 개혁의 뜻을 살려 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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