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구려(1)
고구려 국가 설립과 문화 등을 살펴보기 전에 다시 한 번 한민족 기원설을 살펴보겠다. 상기한 바와 같이 한민족의 기원 관계를 청동기시대의 예맥족, 부여, 고구려, 백제와 신라 등으로 살펴보았다. 신석기시대에 이 땅에 최초로 거주한 사람들은 중국에서 숙신족(肅愼族)이라고 칭했으며, 이 숙신족은 실질적으로 고(古)아시아족(Palaeo-Asiatics) 또는 고시베리아족(Palaeo-siberians)으로 시베리아 일대에 퍼져있던 백인·황인 혼합종(白人·黃人混合種)으로 보는 견해가 오래전부터 제시되고 있다. 숙신족은 중국의 주나라(周朝) 때이며 우호관계를 맺고 있었으며, 주나라 무왕극상(武王克商) 이후에 숙신족이 먼 북방(北方)으로부터 화살과 화살촉(고시석노, 木+苦矢石努)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 화살과 화살촉은 고구려 때에도 널리 알려진 것으로 돼 있다.
중국 선진시대(先秦)시대의 숙신은 중국 양한(兩漢)시대에는 읍루(邑婁)로 칭해졌으며, 남북조(南北朝)시대에는 물길(勿吉)로 칭해졌고, 수당(隋唐) 때에는 말갈(靺鞨), 발해(渤海)로 불려졌으며, 그 후에는 여진(女眞) 또는 여직(女直) 또는 만주(滿洲) 등으로 불려졌다. 만주족(滿族)은 최후의 봉건왕조(封建王朝)- 청나라(淸朝)-를 세웠다.
예맥계(濊貊系)는 중국 한나라·위나라(漢魏)때 부여(夫餘), 옥저(沃沮), 고구려(高句麗), 예맥(濊貊) 등 4대 민족(四大民族)이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그 중 옥저는 동옥저(東沃沮), 북옥저(北沃沮) 두 부족으로 나누어졌다. 이 4족5부(四族五部)의 분포구역은 서북(西北)방향으로는 흑룡강을 거슬러 올라가 정기리강(精奇里江)까지 이르렀으며, 서남방향으로는 대흥안령(大興安嶺) 북쪽 산마루 지점, 여강과 라림하(拉林河) 일대까지 이르러 선비(鮮卑) 각 부족과 접촉했다. 동북(東北)방향으로는 장광재령(長廣才嶺)과 읍루(邑婁)가 접촉되는 지점에 이르고, 동쪽 인근으로는 일본해(日本海)까지 이르고, 동남방향으로 조선반도 한강(漢江) 유역까지 이르러 삼한(고구려·백제·신라)등과 접촉됐다. 남쪽으로는 요동반도까지 도달됐다.
동북지구(東北地區) 고대 소수민족에 관한 내용을 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해 숙신계는 물고기 잡이와 사냥 위주, 동호족계(東胡族)는 수렵과 목축 경제, 예맥족은 농경 위주 겸 수렵으로 돼 있다.
내몽고(內蒙古) 사범대학의 저명한 몽고족 언어학자 망목림(芒牧林)씨는 1만5천 년 전에 내몽고 자치구 동부(東部)의 쟈라이놀과 흑룡강성의 지지할지구가 있는데 그 중에 쟈라이놀에는 오늘날 아시아 지구 80% 이상의 몽고인종(황인종)의 조상들이 살던 곳이며, 그 때 2개의 혈연가족단체(血緣家族群體)가 형성됐다. 한가지(一支)는 흑룡강 중류와 송화강상류지구(고고학적 유적으로 염가강(閻家崗) 유적, 앙앙계 대흥둔(大興屯) 유적이 대표적이라고 발표하고 있다. 다른 한가지는 지금부터 1만 년 전에 송화강(松花江) 유역과 흑룡강 상류의 남쪽으로 내려와서 동북평원과 요동반도에 도착한 숙신인(肅愼人), 부여인(夫餘人)과 조선반도의 조상(先祖)들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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