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득표 객원논설위원

  오늘이 18대 총선 후보등록 마감일이다. 각 정당의 공천과정을 보면서 “공천과정에 국민은 없었다”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동안 정당정치 개혁 방안의 하나로 줄기차게 주장해 온 것이 당내 민주화였다. 당내 민주화의 핵심은 공직후보 공천과 같은 주요 정책결정에 당원과 국민을 참여시키는 상향식 제도였다.
각 정당은 앞다투어 상향식 공천방식인 경선제를 도입했다. 통합민주당은 당헌 제82조 ②항에 지역구 국회의원 후보자는 경선을 통해 선출함을 원칙으로 하되, 중앙위원회의 의결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두고 있다. 한나라당의 공직후보자 추천규정 13조에는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경선후보자로 확정ㆍ의결한 경우 경선을 통해 지역구 국회의원후보자를 추천하도록 되어 있다. 통합민주당은 상향식 공천을 원칙으로, 한나라당은 선별적으로 실시할 수 있도록 당헌ㆍ당규에 명시한 것이다.

지난 17대 총선의 경우 전국 243곳의 지역구 중 열린우리당 80여 곳, 한나라당 20여 곳, 새천년민주당 70여 곳에서 상향식 공천을 도입해 후보를 선출했다. 2005년 공직선거의 경우도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자료에 따르면 20.3%가 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됐다. 하지만 통합민주당과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을 앞두고 단 한 곳에서도 경선을 통해 국회의원 후보자를 결정하지 않았다. 당내외 인사 10여 명으로 구성된 공천심사위원회에서 하향식으로 모든 후보를 결정한 것이다.
그 동안 제왕적 총재의 폐해를 해소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가 당권과 대권 분리, 집단지도체제, 경선을 통한 공직후보자 선출 등이었다. 정당의 주인인 당원에게 공직후보의 선출권을 부여하는 경선제는 당내 민주화의 핵심으로 누구나 공감했고 주요 정당은 경쟁적으로 도입했다. 권위주의적인 총재나 당수가 임명한 공천심사위원이 밀실에서 일방적으로 행사하던 폐쇄적인 공직후보 결정권을 당원에게 넘겨 준 상향식 공천제도는 정당 민주화를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천과정에서 당내 민주화는 실종되고, 정당개혁의 싹이 움을 트다가 시들어 버렸다.
전국 245곳 선거구에서 모든 정당이 경선을 치르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할 수 있다. 선거과열, 지역조직 분열, 불공정 경쟁, 경선관리의 어려움, 사전선거운동, 과다한 경선비용, 당원이나 선거인단의 저조한 참여율 등 부작용도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급적 많은 선거구에서 상향식 경선제를 도입했어야 했다. 최소한 초경합지역구나 계파 간 첨예하게 대립되는 곳은 무조건 경선방식을 택하는 것이 옳았다. 그 이유는 경선을 통해 선출한 후보의 본선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정당의사 결정과정의 민주성과 공정성을 보장하면 지금과 같은 공천파동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회의원 후보 공천과정에 민주성과 공정성이 훼손되면 공천후유증은 일 게 마련이다. 공천이 끝나면 으레 잡음이 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경선제를 도입했다면 낙천자가 불복하고 탈당하거나 다른 당이나 무소속 후보로 출마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한나라당의 경우 박근혜 전 대표가 ‘무원칙 공천의 결정체’라고 비판하거나 강재섭 대표의 ‘불출마 선언’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친박(親朴), 친이(親李), 살생부, 독식, 낙점, 계파간 나눠먹기, 청와대 개입, 이명박당, 형님공천, 원칙실종, 사당화(私黨化), 정당정치의 후퇴, 이상한 공천 등의 소리는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여야가 안정론과 견제론을 내세워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면 최소한 공천과정에서 민주성과 공정성을 유지했어야 했다. 정당을 비민주적이고 불공정하게 운영하면서 국민의 마음을 사기란 힘들다. 정당의 주요 의사결정과정에 무원칙한 밀실정치의 망령이 되살아난다면 정당 민주화는 도로아미타불이 될 것이다. 국민 없는 공천, 국민 없는 총선이 우려된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