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사장 정의성)가 주최하고 인천시가 후원하는 ‘2008 꿈이 있는 아름다운 동행’이 ‘평화통일의 염원을 가슴에 안고 장애우·비장애우 휴전선 155마일을 함께 가다’라는 주제로 지난 27~29일 3일간 일정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지난 2006년 제주도 마라도 탐방으로 시작된 ‘꿈이 있는 아름다운 동행’은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들었으며 지역 중증·재가·저소득 장애우와 비장애우들이 2박 3일 동안 동고동락하며 진행되고 있다.

특히, 아름다운 동행은 중증 장애우들의 문화 향유를 통한 삶의 질 향상과 자신감 회복, 완전한 사회 참여 등의 성과를 가시적으로 이뤄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등 지역사회의 어엿한 문화행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본보는 이번 평화통일 대장정에 동행 취재해 저마다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혼신을 다했던 108명(장애우 56명)의 희로애락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 대장정의 환희

대장정 마지막 날인 29일 오후 5시. 파주에 위치한 임진각 통일공원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졌다.

3일간의 대장정을 마친 108명의 참가단은 모든 일정을 마치고 기쁨의 함성을 쏟아냈다.

   
 

구불구불한 산비탈과 연방 내리쬐는 뙤약볕 때문에 포기할 법도 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닌 ‘대행진단’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했기에 꿈은 현실이 됐고 기쁨은 배가 됐다.
비록 3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들은 평생 두고 잊지 못할 추억을 가슴에 새기게 됐다.

한 중증 장애우 참가자는 “혼자라면 엄두도 내지 못할 대장정이라 처음에는 겁도 많이 나고, 무척 두려웠다. 무엇보다 나 때문에 지치고 힘들 봉사자들을 생각하니 포기하고도 싶었다. 하지만 그들은 내게 먼저 손을 건넸고 그만두고 싶다는 유혹을 느낄 때마다 희망을 줬다”라며 대장정의 소회를 밝혔다.
자신도 벅차지만 좀더 힘에 부칠 중증 장애우와 휠체어에 몸을 맡긴 참가자들을 위해 그들의 손과 발이 돼줬던 중도 장애우들.
그리고 그 옆에 봉사자라는 명함으로 대장정에 동행한 비장애우들과 아름다운 동행을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졌던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관계자들 모두는 어느새 끈끈한 정으로 하나된 ‘가족(家族)’이 돼 있었다.

 # 첫째 날

지난 27일 오전 7시 인천시 남구 간석동에 위치한 장애우인권문제연구소 앞마당은 지난해 이맘 때부터 이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왔던 108명의 참가자들로 들어찼다.

삼삼오오 모여 앉은 자리마다 그간의 안부와 이번 대장정에 대한 기대를 주고받는 등 대부분 참가자들은 대장정을 앞두고 상기된 모습을 띠었다.

특히, 8년 전 교통사고를 당한 박용수(뇌변병장애 1급·40·인천시 남동구)씨는 본인보다 배웅을 나온 어머니로 인해 더 긴장된 낯빛을 보였다.

2박 3일 동안 아들과 떨어져 있는 것이 못내 걱정스러운 박 씨의 어머니 원모(63)씨는 “(아들이)장애를 입은 후 처음으로 떨어져 지내게 됐다”며 박 씨와 동행하는 자원봉사자에게 아들을 잘 보살펴 줄 것을 거듭 당부했다.

대장정단은 오전 8시 대장정 발대식을 마치고 버스에 오른 뒤 4시간 남짓한 낮 12시 첫 순례지인 강릉 오죽헌에 당도했다.

강릉 하늘은 아름다운 동행을 반기기라도 하듯 선명한 푸른 빛깔을 띠고 있었다.

   
 
오죽헌 안내원이 신사임당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8기 장애우대학 재학생인 여광수(지적장애 3급·43·인천시 연수구)씨는 “우리 어머니가 신사임당 같으시다”라며 어머니에 대한 얘기를 꺼냈다.

여 씨는 “항상 부족한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난다”면서 “어머니 역시 나와 같은 장애우이시기 때문에 3일 동안 끼니나 거르지 않으실지 걱정이 된다”라고 말했다.
대장정단은 이날 ‘문화유적 탐방의 날’이란 주제로 강원도 강릉 경포대와 오죽헌, 하조대 38선 휴게소, 낙산사 등을 둘러봤으며, 오후 6시부터는 평화통일을 염원하는 ‘평화통일 결의문 낭독 및 기념식’을 정의성 이사장 주재로 진행했다.

# 둘째 날

28일 낙산 화이트콘도에서 한 호실당 장애우와 비장애우 4~5명 정도가 함께 잠을 이룬 대장정단은 이미 서로의 고민과 일상을 허물없이 물어볼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10년 전 교통사고로 중도 장애를 겪고 있는 지순희(지체장애 5급·47·부평구 부개동)씨는 “몇 년 전까지도 나와 장애우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지난해 아름다운 동행과 이번까지 두 번의 대장정을 통해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며 “이제는 이성지간인 지적장애우들과 살을 부대끼고 껴안아도 한가족처럼 느낄 때가 많다”라고 말했다.

아름다운 동행 평화통일 대장정단은 통일안보 교육의 날로 진행된 둘째 날, 가파른 경사와 계단이 비교적 많은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통일전망대를 찾았다.

가파른 언덕길을 오르기 위해 자원봉사자들은 땀을 비오듯 쏟았지만 모두들 힘든 내색이 없다.

겨우겨우 오른 언덕길 끝자락에는 수없이 많은 계단이 그들 앞을 막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힘을 내자며 중증 장애우를 품에 안고 계단을 오르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한참 언덕 및 돌계단과 씨름을 끝낸 대장정단은 북녘 땅이 훤히 비치는 전망대에서 통일을 염원하는 것 하나로 만족할 뿐이었다.

   
 

3년 전 탈북을 하고 인천에 정착한 새터민 김모(뇌변병·시각장애 1급·67·인천시 남구)씨는 북녘 땅을 바라보며 준비한 크레용으로 종이수첩에 인상적인 풍경을 그려 넣기도 했다.

김 씨는 “우여곡절 끝에 남으로 왔지만 가끔은 북쪽에서 살았던 기억이 떠오를 때도 많다”라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기를 기원했다.

이어 대장정단은 강원도 철원으로 이동해 오후 7시부터 이번 아름다운 동행의 하이라이트인 ‘평화통일기원 축제한마당’을 진행했다.

축제한마당은 총 3개의 팀으로 나눠 다양한 놀이마당과 참가자들의 노래자랑으로 꾸며졌으며, 노래솜씨를 뽐내는 자리에서는 ‘사랑의 기차놀이 응원’ 등 108명 참가자 모두가 하나되는 대화합의 장을 선보였다.

특히, 이날 장애우대학 8기 재학생 자격으로 참가해 노래자랑에서 우수상을 차지한 김옥란(52·여·인천시 남동구)씨는 “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31년 전 헤어졌던 고등학교 동창을 만났다”면서 “이럴 때 운명이란 말을 써야 하는 게 아니냐”라며 소감을 전했다.

김 씨와 31년 만에 해후한 이정철(52·여·인천시 남구)씨 역시 눈시울을 붉히며 “보고 싶었던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 너무나 반가웠는데 (친구가)이렇게 상까지 타서 기쁨이 배가 되는 것 같다”라고 화답했다.

 # 마지막 날

아름다운 동행 마지막 날인 29일.
단잠을 이룬 철원 썬레저텔에서 기상한 대장정단은 이른 아침부터 평화통일 염원의 날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기 위해 눈코 뜰새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했다.

이들은 우선 6·25 당시 3만여 명의 아군과 적군이 가장 치열한 혈전을 치렀다는 철원 철의삼각지와 서울과 원산을 잇는 경원선의 마지막 열차가 있는 월정리역을 순례했다.

이어 남과 북의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한 개성공단의 교두보 역할을 하고 있는 도라산역으로 자리를 옮겨 제3땅굴과 도라전망대 등을 잇따라 방문했다.

오후 5시경 드디어 마지막 행선지인 임진각에 도착한 평화통일 대장정단은 통일을 염원하는 ‘평화통일 결의대회’를 끝으로 3일간의 모든 일정을 마무리했다.

   
 
이 자리에서 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정의성 이사장은 “힘든 여건 속에서도 이번 동행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장애우들과 진정 봉사하는 마음으로 함께 한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이 이렇게 뜻깊은 결실로 남게 됐다”라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사회 각계의 관심과 후원을 부탁한다”라고 당부했다.

 # 참가자 소회

‘2008 꿈이 있는 아름다운 동행’에 함께한 참가자들은 하나같이 큰 행복을 얻게 됐다고 입을 모았다.

주변의 도움 없이는 나들이 한 번 가기도 곤란했던 중증 장애우들은 이번 동행을 통해 아주 먼 곳까지 나들이를 하는 행복을 얻게 됐고, 중도 장애우와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비장애우 역시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가 됐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이들 108명의 대장정단은 3일간의 동고동락을 통해 ‘좋은 벗’을 사귀게 됐다라고 거듭 강조했다.

이번 아름다운 동행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되자 벌써부터 내년 개최를 기다리는 예비 참가자들이 줄을 서고 있는 이유를 설명해주는 대목이다.

이런 연유로 장애우와 비장애우 모두에게 ‘희망’이란 두 글자를 새겨 준 아름다운 동행이 더 많은 이들의 앞날을 밝혀주는 등대가 될 것이라고 기대해 봄 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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