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하늘색 도화지에 희디힌 한지를 살살 밀어 붙인 듯한 하늘, 가벼운 바람에 몸을 맡긴 짙푸른 녹음의 조잘거림이 눈과 귀, 그리고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새얼문화재단(이사장 지용택)의 ‘2008 새얼역사기행’이 9월 25일부터 27일까지 3일 동안 전라남도의 하늘 아래서 진행됐다.
100여 명의 새얼회원들을 태운 3대의 버스는 산과 바다를 벗삼아 고속국도와 구불도로를 내달렸다.
남도 제일의 휴양지라 불리는 구례에서 시작해 골짜기마다 비경을 품은 곡성을 지나 한려수도의 수려함을 자랑하는 여수, 기름진 땅 순천까지.
여기에는 대찰 화엄사를 비롯해 우국지사 매현 황현 선생의 생가, 민족시인 조태일 기념관, 천혜의 미항에 자리잡은 오동도, 한국의 4대 관음기도처 항일암 등 선조들의 아름다운 풍취를 한껏 느낄 수 있는 ‘기행지(紀行地)’가 함께 했다.

 # 첫날, 3大3美의 땅 구례

인천에서 꼬박 5시간을 달려 도착한 구례군은 민족의 영산 지리산과 청정유수 섬진강이 어우러진 비경을 간직한 고장.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해 있는 구례는 예로부터 들판이 크고 수려한 경관, 넘치는 소출, 넉넉한 인심이 어우러지는 ‘3大3美의 땅’으로 불려왔다.
구례에서의 첫 기행지는 청아한 멋을 자랑하는 통일신라시대의 사찰 ‘천은사(泉隱寺, 광의면 방광리)’.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샘에 얽힌 전설을 간직한 천은사는 짙푸른 호수의 은근한 정취를 선사했다.
정신이 맑아진다고 전해오는 감로수(甘露水)를 맛본 새얼 일행은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李匡師, 1705~1777)가 쓴 일주문 명판 등을 눈에 새겼다.

이날 기행의 중심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명찰, 화엄사다.
웅장한 지리산을 배경으로 장엄한 분위기를 풍기는 화엄사는 목조문화재 중에서도 첫손에 꼽히는 국보 제67호 각황전을 비롯해 국보를 4점이나 보유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각황전은 오랜 풍상에 단청이 모두 벗겨졌음에도 우리 고유의 건축미와 우아함을 동시에 뽐냈다. 
동백나무, 차나무, 대나무로 뒤덮인 화엄사의 풍광에 매료돼 한참을 머물렀던 새얼 일행은 해질녘의 법고 소리까지 모두 안고서야 어두컴컴한 산자락을 내려왔다.

   
 
여기에 일행들은 해인사의 말사로 25교구 본사의 하나인 쌍계사(雙磎寺, 화개면 운수리)와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를 둘러보는 일정을 소화했다.

 # 둘째 날, 심청의 고향 곡성과 바다를 품은 여수

흐릿했던 첫날과 달리 맑게 개인 둘째 날은 황금빛으로 물들인 벼와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섬진강 물결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는 하루가 이어졌다.
전날 구례에 머물렀던 일행은 이날의 첫 기행지로 매천사(梅泉祠, 광의면 수월리)를 찾았다. 매천 황현(梅泉 黃玹, 1855~1910)선생의 위패를 모신 매천사에서는 조선후기 절의를 지킨 우국지사이면서 대문장가인 그의 일생을 들어볼 수 있었다.

매천사를 뒤로 하고 이동한 곳은 곡성군.
전라남도 북동부에 위치한 곡성은 곡성남부를 흐르는 보성강과 구례 쪽으로 내려가는 섬진강이 만나 압록의 풍광이 뛰어난 곳이다.
효녀 심청의 고향으로도 유명한 곡성에서는 동리산 자락에 있는 태안사(大安寺, 죽곡면 원달리)와 그 초입에 자리하고 있던 조태일(1941~1999)시문학 기념관, 증기기관열차 등이 전시돼 있는 섬진강 기차마을(곡성읍 읍내리)을 차례로 둘러봤다.
뒤이어 차를 달려 도착한 곳은 여수시.
크고 작은 섬들이 푸른 바다와 어우러져 더없이 아름다운 경관을 뽐내는 여수에서 일행들이 찾은 곳은 동백꽃으로 유명한 오동도(수정동)와 임진왜란 당시 수군 중심기지로서의 역사성을 지닌 진남관(鎭南館, 군자동 471)이다.
특히 ‘바다의 꽃섬’으로도 불리는 오동도에서는 섬의 명물인 동백나무와 이대를 비롯해 참식나무·후박나무·팽나무·쥐똥나무 등 다양한 희귀 수목이 일행들을 맞았다. 코끝과 눈에 담긴 울창한 숲은 마치 지친 도시사람들의 몸과 마을을 위로하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숨가쁜 둘째 날 일정을 모두 마친 일행은 그 풍경만으로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향일암 인근에 짐을 풀고 수시간 후의 일출을 기약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 셋째 날, 용궁의 풍경 여수 향일암 그리고...

   
 

향일암(向日庵, 돌산읍 금오산)은 새얼문화재단이 이번 역사기행에서 가장 자랑하는 기행지.
금오산이 바다와 맞닿은 가파른 언덕에 자리한 향일암은 화엄사의 말사로 수평선에서 해가 솟아오르는 일출광경이 천하일품으로 꼽히는 곳이다.
새얼 일행들은 이날 새벽 5시경부터 향일암에 오르기 시작해 6시경 고대하던 일출을 지켜봤다. 해가 솟아오름과 동시에 간밤 어둠에 갇혀 있던 감응도, 부처가 머물렀다는 세존도, 아미타불이 화현했다는 미타도 또한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른 새벽 어둠 속 40여 분의 산행과 맞바꾼 ‘해맞이’의 감흥은 이후로도 한참이나 이어졌다.
뒤이어 여수와 헤어지고 만난 순천.
역사와 문화가 살아 숨쉬는 생태도시 순천시에서는 철새, 갈대, 갯벌 등 자연생태계의 보고인 순천만자연생태공원(대대동 162-2)과 승보(僧寶)사찰로 유서 깊은 송광사(松廣寺, 송광면 신평리)를 둘러봤다.
드넓은 개펄과 갈대숲이 장관을 이룬 순천만자연생태공원은 그 수려한 경관으로 일행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마지막 기행지인 송광사는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모습과 국보 제42호 목조삼존불감 등 다양한

   
 
문화재를 선보였다.

 # 새얼역사기행은?

올해로 23회를 맞은 새얼문화재단의 ‘새얼역사기행’은 새얼장학생들과 후원회를 대상으로 매년 진행하는 역사여행이다.
옛 선조들의 슬기와 참 멋을 찾아나선다는 기획에 맞춰 지난 역사기행에서는 ‘백제문화권’, ‘신라문화권’, ‘안동, 풍기’ 등을 찾기도 했다.
새얼문화재단 지용택 이사장은 “여행의 즐거움은 비단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새로 느끼고 배우는 지적 충만에 있다”며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곳에서 함께 한 역사기행이 새얼가족 모두에게 행복한 추억으로 남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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