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월요일(10월 27일)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 시정연설을 통해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경제주체들이 자신감을 갖고 정부의 정책에 적극 동참해 줄 것과 국민적 단합을 호소했다. 대통령이 직접 시정연설에 나선 것은 지난 2003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취임 첫해 시정연설에 나선 이후 5년 만이다. 그 동안 정부의 예산안 시정연설의 경우 주로 국무총리가 대독하던 것이 관행이었으나 시국의 중대성을 감안해 이 대통령이 자청했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설명하고, 대통령으로서의 정책의지를 천명한 뒤 각계의 협조를 요청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 이는 국제적 신뢰회복을 위해 정치권의 조속한 법적·제도적 뒷받침을 촉구하고, “지금 한국에 외환위기는 없다”는 확신을 심어줌으로써 국내시장에서의 막연한 불안 심리와 불신을 잠재우기 위한 조처다.
이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정부의 경제위기 돌파의 해법으로 적극적 국제 공조를 천명하고, 유동성의 충분한 공급을 통해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한편, 내수 진작을 통해 위기를 정면 돌파하겠다는 복안을 제시했다. 세부적 조치로 세계적 실물 경제 침체에 대비한 재정의 적극적인 역할 확대, 사회간접자본 투자 확대, 중소기업과 서비스 산업의 지원 강화 등의 필요성을 열거하며 선제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그러면서 감세정책의 추진과 규제개혁, 기업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아울러 몸집 키우기에만 열중하는 일부 금융권의 행태와 전당포식 금융관행에 경고를 보낸 뒤 신용평가 기능과 자산의 건전성에 대한 관리 감독 강화를 강력히 주문했다.

대통령의 시정연설을 두고 정치권은 이날도 뚜렷한 시각차를 드러내며 내용 하나하나를 놓고 비생산적인 공방을 일삼았다. 한나라당은 “국민에게 희망과 자신감을 불어 넣은 연설이었다”고 호평한 반면, 민주당 등 야당은 “대통령의 현실인식 부재가 여실히 드러난 연설일 뿐이다”고 혹평하는 등 여전히 판에 박은 논평으로 소모전을 이어갔다.
이에 앞서 이날 본회의장에서 일부 선량들의 의해 재현된 행태는 더욱 가관이었다. 오전 10시 무렵 시정연설을 위해 이 대통령이 본회의장에 입장하자 한나라당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 박수로 맞았고, 야당 의원들은 박수 없이 서 있기만 했다. 특히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이 대통령이 연설을 시작하자 강기갑 원내대표를 비롯해 권영길, 곽정숙, 이정희, 홍희덕 의원 등은 “더 큰 위기가 오고 있습니다”,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적혀진 1인용 플래카드를 들고서 침묵시위를 벌인 뒤 10분만에 일제히 퇴장을 했다. 이 대통령이 연설하는 26분 동안 모두 9차례의 박수가 나왔다. 모두가 한나라당 의원이었고, 민주당 의원들은 한 번도 호응하지 않았다.
대통령의 시정연설과 관련한 국회 본회의장에서의 이 같은 모습은 우리 국민의 기억 속에 이미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5년 전인 지난 2003년 10월 13일 당시 대통령이던 노무현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들어섰으나 여당인 통합신당 의원들은 일제히 기립박수를 보낸 반면, 야당이던 한나라당 의원 대부분과 민주당 의부 의원들이 그대로 앉은 채 대통령을 맞았다. 연설 중 박수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불과 8개월 뒤인 2004년 6월 노 전 대통령이 연설을 위해 본회의장에 입장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여야 의원 대부분이 기립박수로 맞았으나 정형근, 박계동 의원 등 한나라당 의원 20여 명은 자리에 앉은 채 있었고, 심지어 박계동 의원 등은 노 대통령의 연설 중 2층 방청석까지 들릴 정로로 큰 소리로 비웃기까지 해 여론의 거센 질책을 받기도 했다.
5년 뒤 한나라당은 그토록 고대하던 수권정당이 됐다. 그로부터 수년의 세월이 지난 이날 한나라당은 당시의 여당 격인 민주당으로부터 그날의 기억들을 유사한 방식으로 되돌려 받았다. 한나라당은 이날 민주당과 민노당 의원들이 보여준 일련의 행동에 대해 이렇다 할 논평을 내지 않았다. 아마도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몹쓸 전통’이 국민들 기억에서 되살아나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권 모두가 ‘자업자득’의 평범한 진리를 곱씹어 봐야 한다. 최소한의 정치적 도의와 예의, 기본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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