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식 객원논설위원(시인·인천문협 회장)

 대구시에 대한 인상은 한마디로 시가지의 차분함과 정돈이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거기에도 다소 소란한 간판들과 반듯하지 않은 삼거리와 복잡한 오거리가 있고, 또 한창 공사를 벌여 놓아 시끄러운 지역도 군데군데 있었지만 대체로 단정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그저 무미(無味)하다는 말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와는 반대다. 연전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지만, 도시 미화의 측면에서 대구시는 적어도 우리 인천과는 다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눈에 띄는 단적인 예 하나가 고가교나 철도교의 단장이었다.
대구의 고가철교나 철도변 소음 차단벽은 아주 멋있고 예쁜 디자인으로 치장돼 있었다. 무미가 아니라 우울하고 침침한 단색의 긴 차단벽을 그야말로 감미(甘味)의 아름다운 벽화로 변모시켜 놓은 것이다. 비단 이런 도시가 대구 한 곳만은 아닐 것이다. 또 여전히 밋밋한 회색 차단벽과 고가교를 가진 도시도 상당수 있을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인천은 바로 밋밋하고 음울하고 침침한 도시에 낀다. 중구 인천역에서 부평구 부개역에 이르도록 국철인 경인철도는 인천의 도시 한복판을 가로지르면서 곳곳에 차단벽과 함께, 그 위로든 아래로든 고가교를 형성하고 있다. 그런데 그 시설들은 모두 용도(用途)만 있고 미관(美觀)은 가지지 않은 쇠와 시멘트의 살벌한 물체들이란 점이다.
철도로 치면 우리나라 최초의 시발지로서 철도사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최고(最古)의 도시인 인천의 철도시설(혹은 보조시설)이란 것이 이런 정도인 것이다. 물론 철도 역사가 제일 오래라서 시설과 대접이 다를 수는 없겠지만, 그 같은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한 인천시민의 느낌은 썩 밝지가 못하다. 철도와 철도가 놓인 부지, 역사, 그리고 이런 부속 시설들은 모두 철도를 관장하는 한국철도공사 소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 인천시민이 그것이 시멘트 덩어리이든 쇠조각이든 그에 대해 뭐라 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엄연히 행정 관할이 다르니까. 그렇더라도 매일 아침 그 철교 중의 하나인 배다리철교를 바라보며 사무실로 출근하는 사람의 소회는 한 번 피력해 보자.
배다리철교, 즉 ‘배다리철로문다리’는 어려서 학교를 다닐 때에는 증기기관차가 위로 지나면서 연료인 석탄 부스러기를 흘리기도 했고, 하학길에는 위태롭고 앙상하게 레일이 얹힌 철교를 무단히 건너기도 했었던 추억의 철교였다. 그때는 철교가 도시를 양분을 하든, 삼분을 하든 개의치 않았다. 또 그것이 붉은 색을 칠한 철교였든, 소음 차단벽이 없이 우레와 같은 요란한 소리를 내 가끔씩 놀라게 하는 다리였든 상관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시절은 6·25전쟁이 막 끝난 시점이어서 너나 할 것 없이 그저 생존하는 것만이 지상 목표였던 때였다. 철도 주부(主附) 시설의 편리, 미관적 안락 따위는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반세기가 지난 오늘. 이제는 어제의 그 처절한 생존이 아니라 느긋하게 삶의 품위와 질을 돌아보고 따지는 시대가 된 것이다. 배다리철교가 소음을 내서도 안 되고 시설이 불편해서도 안 된다.
근래 확장 공사로 배다리철교가 밑 부분을 막고 양 옆에도 차단벽을 설치했다. 이것 역시 근 반세기만의 일일 것이다. 그러나 철교 위에 그 높다랗게 설치된 아무 색채가 없는 단조로운 차단벽과 선로를 넓히면서 쌓은 축대 겸 통행로의 밋밋한 단색 타일벽은 여전히 반세기 전과 다름없다. 소음은 줄였다지만 도시의 색깔, 인천시민의 품위와 미관과는 상관이 없는 반세기 전과 마찬가지로 오직 ‘용도’만 있는 구조물이기 때문이다.
내년에 우리 인천은 세계도시축전을 개최한다. 그 준비의 하나로 인천시는 이런 철도 구조물들의 경관을 아름답게 디자인하도록 철도공사와 논의해야 한다. 도시를 분할하는 이 같은 우울한 구조물들을 대구시처럼 생동하게, 아름답게 바꾸어야 한다. 듣자 하니 경인선은 상당한 흑자 노선이라고 한다. 승객이 넘쳐 복복선에 급행까지 운행하고 있다. 철도공사는 배다리철교부터 디자인할 선의의 의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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