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의 싸늘한 바람은 겨울이 멀리 있지 않음을 알리는 자연의 속삭임이다. 바야흐로 겨울의 시작이다. 일순간 몰아치는 바람은 짧았던 가을의 끝임을 알리고 벌써 긴 겨울이 시작됨을 고한다. 입동을 기점으로 들녘의 가을걷이도 어느덧 끝나고 바쁜 일손을 털고 한숨 돌리는 시기다.
이맘 때면 수확을 끝낸 들판에선 소들의 중요한 겨울먹이인 볏짚을 모은다. 모든 볏짚은 농가 마당에 보기 좋게 쌓아 두기도 하고, 논배미에 단촐히 모아두기도 한다. 농가의 큰 일꾼이자 초식동물인 소에게 볏짚같은 풀사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먹이인 것이다. 입동은 천지만물이 양에서 음으로 변하는 시기다. 이제 길고 고통스러운 겨울의 시작인 셈이다.

농업이 국민경제의 근간임을 온 국민이 인식하고, 농업인의 긍지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1996년 제정된 농업인의 날이 올해로 13돌을 맞는다. 흙의 진리를 탐구하며 흙을 벗 삼아 흙과 살다 흙으로 돌아간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열십자(+) 한일(-)을 더하면 흙土가 두 번 겹치는 11월 11일(土月 土日)을 공식 지정한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주된 식량을 생산하기 위해 1년 내내 땀 흘린 농업인들을 생각해 보는 날이라는 뜻이다.
사실 11월 11일이 ‘농업인의 날’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는 듯하다. 수입 농산물로 갈수록 힘든 우리 나라 농촌 현실을 고려해 보자면 진정 우리가 챙겨야 할 날이 상술로 얼룩져 버린 ‘빼빼로 데이’로 인해 잊혀져 간다는 것이 서글프기만 하다.

농가부채 증가와 농산물 수입 급증으로 우리 농업인들의 어깨는 늘 축 쳐져 있다. 농업인이 주인공인 이 뜻 깊은 날에도 그들은 ‘빼빼로 데이 마케팅’이란 상술 앞에 제대로 어깨 한 번 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농업ㆍ농촌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적 방향이나 농업인 스스로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온 국민들이 농업의 가치를 바르게 이해하고, 농업·농촌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일에 동참하는 일이 중요하다.

우리 농업을 지키는 일, 우리들 마음속의 영원한 고향인 농촌을 지키는 일, 농촌사랑을 실천하는 것, 그렇게 거창한 일이 아니다. 고향에 계신 우리 부모형제들이 농사지은 농산물을 직접 구입해 음식을 만들고 먹으면서 농업인들이 흘린 땀과 흙의 정직함을 생각해 보거나, 일손이 부족한 영농현장에 작은 손길을 보태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농촌을 향한 우리 모두의 관심과 사랑 그리고 실천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지금 농업·농촌은 FTA 등 개방의 파고와 비료, 농약, 유류, 사료 가격의 상승이 농업 생산비의 증가로 이어져 농가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거대한 세계화 개방화의 물결을 우리 농업만이 피해 갈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다만 그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농업인의 소득과 삶의 질이 안정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국민이 농업·농촌을 지켜 주고, 농업에 대한 관심과 사랑과 응원을 보내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 모두 농업과 농촌에 대한 관심과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우리 농업은 그간 국민의 생존문제와 관련된 식량창고로서의 역할과 함께 민족의 전통문화와 농업·농촌의 가치를 보전하고 지켜 왔다. 농업인의 날을 맞아 우리 농업과 농촌의 가치, 도·농 균형발전 등 중요성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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