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호(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가장 발전된 첨단 금융기법으로 가장 미천한 경제적 약자들을 상대로 벌이를 했던 이른바 ‘빈곤 비즈니스’로 불리는 서브프라임 대출과 같은 악질 금융 장사의 야만성이 미국발 금융공황의 발발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났다. 특히 이러한 발악적(?) 금융 추태가 세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건 상품화해 수익을 추구하고자 하는 이른바 ‘만물의 금융화’를 추구하던 신자유주의 노선에 의거한 것이었음이 폭로됐다는 점은 큰 의미를 가진다.

1929년에 시작된 세계 대공황은 ‘구자유주의’ 노선의 파국을 의미했다. 즉, 이전부터 관철돼 왔던 자유방임 경제의 종언이기도 했다. 그 후 등장한 것은 국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경제정책, 즉 적자재정정책에 의한 내수주도형 경제확대책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30년간 이 정책은 유례없는 장기 호황의 미시적 기초로 작용했다. 그러나 결국 선진국들이 70년대의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 그리고 재정적자에 시달리자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논의들이 등장하면서 이 정책은 서서히 고개를 숙였다.

이와 같은 분위기 하에서 완장을 차고(?) 등장한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 노선으로, 이는 ‘규제 없는 자유로운 시장만이 만능‘이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제학 강단은 이와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로 포진돼 있다! 글로벌화 추세 하에서의 자본·금융 자유화, 공기업 민영화를 슬로건으로 제시하면서 다국적기업과 같은 대기업 및 대형화된 금융기관의 ’자유로운 이익 추구‘ 기회의 확보를 최우선시해 왔다. 수익은 글로벌 자본이 몽땅 챙기고 희생은 경제적 약자에게 고스란히 돌리면서 자본주의의 재편성을 추구해온 이 노선은 1980년대에 들어와 미국의 레이건 정권, 영국의 대처 정권에 의해 강력하게 추진됐다. 미국에서는 금융공학이라고 하는 신종 기술을 자유롭게 구사하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이 금융위기 이전부터 신자유주의 노선을 상징하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로서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이렇게 보면, 지금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금융위기의 원흉이 바로 신자유주의 노선이며, 그 신자유주의 그 자체가 파탄에 이르게 됐다는 역사적 의미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이 더덜더덜해진 신자유주의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서민들의 혈세로 어떻게든 금융위기를 수습한 후에는 시장과 정부의 관계가 지금과는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다면 시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정부개입이 바람직한 것인지, 또 글로벌화 시대에 있어서의 규제는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다.
시장만능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란 과연 어떤 것인지 하는 보다 근원적인 테마를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국가들이 다함께 고민해야 한다. 또 각 국가 차원의 논의에 덧붙여 노동자·대중을 포함한 전 세계 시민들 역시 이 고민의 과정에 동참해야 한다. 시장에 대한 견제기구로서 국가만을 상정하는 것은 역사를 되돌리는 매우 단순한 논의이다. 따라서 이번 금융위기에서 폭로된 ‘시장의 실패’와 서민을 먹이로 삼아 비즈니스를 해 온 ‘시장의 야만’을 견제할 수 있는 주체는 바로 ‘다중(multitudes)’이다.
A.네그리에 따르면 ‘다중’은 노동시스템을 중심으로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고 있는 제국적 질서에 대해 확고한 계급적·정치적 각성을 통한 앙가주망(engagement)보다는 상대적으로 개별적 차원에서 저항하며 더 나은 삶을 추구하고자 하는 주체들이다. 이들의 연대를 위하자! 신자유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보다 더 넓고 시민적이며 또 ‘구축 가능한’ 변혁 주체 다짐을 위해서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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