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가 어려워지면 절도죄가 늘어나는 법이다. 생계형 사기와 절도 범죄는 생활이 어려워 질수록 더욱 기승을 부려 가뜩이나 힘든 서민들의 생활을 더욱 팍팍하게 만들 뿐 아니라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미국 발 금융위기로 주가가 폭락하는 등 한국경제가 시련을 맞고 있는 요즘, 언제나 그랬듯 경제가 어려워지면 서민들이 제일 괴롭다. 점점 생계를 위한 절도가 늘어나고 절도의 대상에는 서민들이 이용하는 공공시설물을 포함해 지하철역에서 무료로 뿌려지는 신문까지 포함되고 있다.

지난 3월 서울에서는 이모(45)씨가 생활비 마련을 위해 공중화장실의 알루미늄 문짝을 뜯어 팔다가 구속됐고, 광주에서는 44만 원 상당의 무가 신문과 생활정보 신문을 훔친 혐의로 채모(73)씨가 불구속 입건됐다. 경기 군포에선 아파트를 돌며 소방호스 노즐을 훔쳐 팔다 경찰에 잡혔으며, 해고된 40대 남자는 지하철역 앞에 세워놓은 자전거를 훔치다 붙잡혔다. 또 광주 모고교 3학년생은 지하철 역 화장실에 설치된 콘돔 자판기에서 돈을 훔치다 붙잡혔고 지하철 내 선반 위에 놓인 승객들의 가방을 상습적으로 훔친 대학 휴학생이 구속되기도 했다.

생활 속의 범죄는 늘어나고 그 행태도 이처럼 다양해지고 있다. 이 가운데서 새롭게 등장한 신종 생계형 범죄-무료신문 절도-는 지하철 무료신문의 수난시대를 열었다. 무료신문을 훔치는 것은 유죄인가 무죄인가.
최근 승객들의 민원이 이어지고 있는 무료신문과 관련한 절도 사건이 있었다. 서울의 한 지하철역에서 무료신문 131부를 무더기로 집어간 할머니(67)가 입건됐는데 업자는 “무가지지만 구독 시 1부당 2천 원을 받기 때문에 26만2천 원을 훔친 셈”이라며 처벌을 요구했고, 경찰은 “할머니의 행위는 점유권이 인정되는 물품을 훔친 절도죄에 해당한다”고 했지만 불특정 다수에게 무료로 제공되는 무가지에 점유권이 인정되는지는 법조계에서조차 의견이 엇갈렸다.

“무가지는 누구나 들고 갈 수 있고 지키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점유권을 인정받기 어려워 절도로 보기 힘들 수 있다”는 의견과 “무가지는 목적을 가진 상품이어서 소유자가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고, 한 사람이 대량으로 가져가면 그 목적을 훼손시킨 것이기 때문에 절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의견, 그리고 “무료로 배포되니 얼마 만큼 가져가야 절도죄가 성립하는지는 모르겠다”는 의견 등이다.

이런 사건이 잦아지고 있으며 전국적인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생계를 위해 지하철 내에 버려진 무료신문을 서로 가져가려는 노인들이 급증해 출퇴근 시간대 승객들이 고통을 호소하더니 이제는 무료신문을 대량으로 훔치는 일이 빈번해져 무가지 업체들 또한 골치를 앓고 있는 것이다.

청주지역에서는 무가지 배부대 중 5% 정도인 200여 대 이상이 무단 수거의 표적이 되고 있다고 한 업체 측이 밝혔다. 이 업체는 “최근 폐지 가격이 폭등하면서 주택가에 배치된 무가지를 훔쳐가는 사례가 크게 늘었다. 무단 수거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발생하며 그 양은 20~30% 정도”라고 했다. 이에 업체마다 무가지 수시 예찰 활동은 물론 제보 전화를 설치하는 등 무가지 절도 근절에 나섰고, 나아가 무가지를 대량으로 갖고 가는 것이 죄가 되거나 처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인식이 무단 수거를 부추기는 주요인라고 보고 인식 전환을 위한 홍보도 강화하고 있다.

무가지 대량 절도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청주지법 판사는 “무가지도 재산상의 가치가 있는 재물에 해당하며 지속적인 관리가 이뤄지는 만큼 발행사의 점유물로 인정된다. 오로지 폐지로 판매할 목적으로 이를 단기간에 걸쳐 대량 수집하는 행위는 절도로 봐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에서 무가지 대량 절도 행각에 대해서는 분명히 유죄를 선고했다. 무가지 몇 장 정도라 하더라도 시민을 위한 시설물이나 물건은 함께 공유한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경제가 어렵고 생계가 어려울수록 서민들이 이용하는 지하철과 그 부대시설을 아끼는 마음 역시 필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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