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제(기원전 18년~기원 660년)
백제의 최초 정착지는 아직 미확인이며, 백제 초기 국가 탄생 연대의 기원전 18년설도 미확인이고, 고고학적으로 한성(漢城)시기는 4세기 초~475년, 웅진(현 공주)은 475~538년, 마지막 정착지 사비(현 부여)는 538~660년까지다.

한성시대 정착유적으로서 토성은 풍납토성으로, 삼국사기에 따르면 286년 수축했고 서울지역의 평지읍성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 2곳이다. 전자의 길이는 1.5km, 너비는 300m다. 성벽은 모래와 진흙을 섞어 판축법으로 처리됐다. 서울시 강동구에 위치한 몽촌토성은 풍납토성에서 서남방향으로 약 1km 지점에 위치해 있다. 한성시대의 백제 무덤은 풍납토성과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한강 남안의 가락동, 방이동과 석촌동에 집중돼 있다. 또한 경기도 여주의 상리, 매용리, 포통리 등에서도 석실과 석곽무덤 등이 확인됐다. 무덤들은 돌무덤과 봉토무덤으로 나누어 졌다. 봉토무덤은 석실, 석곽, 토광무덤으로 세분되고 있다. 돌무덤은 서울시 석촌동 해발 20m 정도의 대지 위에 수십 기가 확인됐다.

한강지역의 백제무덤은 시기적으로 두 시기로 나누어 졌다. 이른 시기는 4세기 것으로 토광묘, 냇돌무덤, 백곡리식 석곽무덤이며 후기 5세기 것으로는 석촌동3.4호 같은 석실무덤, 가락 방이동식의 석실 봉토묘, 그리고 작은 석곽무덤 등이다. 한강유역의 토광묘(옹관묘 포함), 석곽묘 등의 토착묘제에 고구려식 돌무덤이 겹쳐진 석실분이 있다.

한성에서 웅진(공주)으로 수도를 옮긴 웅진시대(475~538년)는 한성시대의 돌무덤은 사라지고 ㄱ자형 석실무덤과 장방형 석실무덤 그리고 중국 영향의 벽돌무덤으로 송산리 6호분과 무령왕능이 있다. 무령왕능 출토품은 장신구로서 금제관식, 금귀고리, 금목걸이, 금은 팔찌, 칼, 거울, 구리그릇, 은그릇 등이다. 왕비 팔찌의 명문에 따르면 그것은 520년에 왕비 용으로 제작됐다.

사비시대(부여 538~660년) 부여에서는 ㄱ자형 석실무덤은 사라지고 연도달린 상자형 석실무덤만 존속하며, 이 전통은 전북 남원, 임실 등 소맥산맥으로 전파됐다. 부여 능산리 6기 왕릉은 일본인들에 의해 1915~1937년 사이에 조사됐다. 유물은 모두 도굴당했다. 영산강 유역인 나주군, 영암군, 무안군 일대에 옹관묘가 많이 확인됐다.

백제토기는 평저기, 삼족기, 회백색 연질 등이다. 토기의 장식 돗자리 무늬는 원 삼국시대 전통이며, 삼족기는 중국 남쪽지방 6조(六朝) 토기의 영향으로 보고 있다. 백제 성곽은 한강변의 풍납토성, 몽촌토성과 경기도 광주의 이성산성이 있으며, 웅진(공주)의 공산성과 사비(부여)의 부소산성이 있다. 백제의 성곽은 고구려, 신라 등과 비교해 흙을 견고히 다져 판축법으로 쌓았다.

 
  #  신라(기원전 57년~기원 935년)
경주를 중심으로 신라문화를 대표하는 무덤들이 현재까지 약 200기 확인됏다. 경주지역 무덤은 3시기로 분류되고 있다. 전기(기원 전후한 시기~서기 300년)로 돌곽무덤과 옹관묘, 중기(서기 300년~600년)로 고신라 및 가야시대의 적석목곽분, 후기(서기 600년~900년)(통일신라시대)로 석실무덤과 화장 무덤 등이다.

경주시대의 무덤군은 6군으로 나누어 지고 있다. 남산 서북 일대의 박씨무덤, 인왕대 일대의 석씨(昔氏)무덤, 황남·로서·로동동 일대의 김씨무덤군, 명활산 남쪽 언덕의 가리촌지구, 소금강산 서쪽의 고야촌지구, 금척리의 대수촌 지구 등이다.

왕무덤의 봉토 주위에 간단한 돌 돌림(護石)이 있었다. 이것이 발달돼 무덤 네 구석돌 또는 탱석(돌 담벽) 등이 되기도 하고 네 구석 돌에 십이지상(十二支像)을 조각한 것도 있다. 돌 돌림 축조는 신라인들의 창의적인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무덤 축조에 따라서 돌사람(石人)과 돌짐승을 왕무덤 앞에 축조한 것은 통일신라 때부터 시작됐다. 예로 원성왕릉 무덤 앞에 문인(文人), 무인(武人)의 돌상과 돌사자가 비치돼 있다. 벽화무덤은 고령, 영주에 확산돼 이 지역 내의 고구려계 출신의 것으로 보고 있다. 부장품은 금제관 등 대량의 장식품과 철제무기, 마구와 대량의 토기 등은 가야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신라의 무덤(가야 포함)은 경주를 중심으로 안동, 대구, 성주, 창녕, 고령, 선산, 함안 등지에 널리 분포돼 있다.
신라는 삼국을 통일하면서 문화적으로 고구려. 백제 문화를 흡수하고 더 나아가 중국 당나라의 문화를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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