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진삼(객원논설위원/건축비평가·광운대 겸임교수)

 한국 최초, 최고의 도시를 내세우는 인천에 그제로부터 지금까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 인천 건축가의 부재(不在)다. 인천국제공항과 151층 인천타워와 송도 컨벤시아 등이 인천의 도시 미래를 표상하는 상징성을 안고 도시의 홍보판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지만 정작 인천을 상징하는 건축가가 없다는 것은 아이러니다. 인구 270만이 넘는 광역도시이며, 동시에 글로벌 명품도시를 꿈꾸는 인천에서 오늘날 주목되는 건축물의 대부분이 교환가치를 앞세운 부동산 개발사업의 일환이고, 그나마 외국계 부동산회사가 인천의 얼굴마담이 돼 인천의 미래를 쥐락펴락하는 마당이니 인천에 뿌리를 내린 건축가를 찾는다는 것이 온당치 않은 발상일 수 있다.

지난 수개월에 걸쳐 해방공간 이후 인천에서 활약한 한국의 현대건축가 목록을 작성하는 개인적인 연구 과제를 수행한 바 있다. 1차 단계에서 이희태, 김중업, 김수근 등 한국의 1세대 현대건축가 군으로부터 출발해 현재의 40대 초반까지 개략 40인의 건축가 목록을 작성할 수 있었지만 스스로 내린 결론은 궁색했다. 그 중 어느 누구를 지목해 인천을 대표하는 지역의 건축가 혹은 동네건축가로 선뜻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던 것이다. 현재 인천에서 활동하고 있는 다수 건축인(사)들의 존재를 무시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이 느끼겠지만 지역의 건축가로서 존경받는 위상과는 거리가 멀다 라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인천시가 글로벌 명품도시화를 선언하면서 초대형 건축물의 건립을 통해 인천의 상징성을 구현하려는 태도로 말미암아 상대적으로 지역 안에서 오래되거나 작은 것들의 가치가 소멸되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인천을 무대로 인천다운 건축의 실험과 작업에 몰두하며 지역에 깊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원천 봉쇄하는 하나의 이유가 된다. 건축을 경제논리로만 따지려드는 도시의 명품주의는 그 땅의 역사인식을 방기한 채 당장 눈을 홀리는 외래종의 비판 없는 이입과 확산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동시에 건축의 상품화는 몰개성의 도시경관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고, 지역성의 붕괴와 봉쇄의 구조 안에서 우리 건축의 자율성을 훼방하며,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지역다운 건축의 존재와 생성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것이 제도화되는 것이 필요하단 말인데 이것은 문화축제(festival)와 같은 일회성 행사와는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어야 한다. 도시개발사업과 주거환경개선사업 등에 임하는 인천시의 보다 전향적인 태도로 지역의 현안을 보듬으며, 삶의 질을 회복시키는 공간의 치유법을 주된 목표로 한다면 당연히 지역의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며,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지역 내 건축가들의 출현과 그들의 활약에 의한 지역문제에 밀착된 생산적 프로그램을 기대할 수 있다고 본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지역 혹은 동네 건축가의 존재가 부상하는 것이다. 도시의 풍경도 현재의 타워형 대규모 단지개발 방식에서 벗어나 지형과 풍토에 맞는 건축의 양상으로 도시의 경관이 하나둘 바뀌어 나갈 수 있게 된다. 단위건물의 질적 개선도 기대되며, 오래되고 낡은 건물도 시간을 담은 건축의 새로운 양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인천을 주무대로 건축행위를 하는 유능한 인재의 발굴과 지원이 급선무다. 대학과 설계실무자들을 엮는 네트워크가 활성화될 필요성이 있고, 지속적으로 인천의 건축문화를 중심주제로 하는 세미나와 워크숍 등 효과적인 프로그램의 운용이 요구된다. 여기에 지방건축행정 부서와 도시디자인 등의 담당자들도 가세해 함께 공부하는 인천건축의 판을 키우면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그런 성격의 모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모임의 설립 명분과 다르게 대개가 운영 주체들의 실리주의와 이기심과 배타적 성격으로 인해 구성원의 개별적 성취 이상의 효과적인 네트워크가 되지를 못했다. 일단은 이 같은 모임의 구태를 극복해야 한다.

방법상으로는 우선 지역 내에서 활동하는 예비 건축인(사)들의 재교육과 주택 및 건축 도시디자인 관련부서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하는 합동의 연간 프로그램을 상설화해 학습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그로써 직능 간, 업역 간 차이를 이해하고 각자의 위치를 탈권력화해 진정으로 협력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공고하게 다져야 한다. 나아가 저들 스스로가 인천을 대표하는 전문가로서 자신을 정위시키며, 끊임없이 자기 성취를 위해 내달리게 할 때 인천의 변화는 조금씩, 그러나 아주 힘 있게 다가올 수 있을 것이다. 지역의 건축가는 그런 피나는 학습과 협력의 과정을 통해서 탄생하는 것이 맞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들 중 어느 누구가 타 국가·타 도시·타 지역에 불려나가 자신의 건축 작품을 보여주며 자신있게 말하는 날이 오지 않겠는가.
“나는 인천의 건축가입니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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