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BC 552~479)는 중국 춘추시대 노(魯)나라 사람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의고 빈곤속에 학문에 뜻을 품어 유가(儒家)의 시초가 됐다. 그가 가장 존경했던 사람은 어린 조카인 주(周)나라 성왕(成王)을 도와 태평성세를 이룩한 주공(周公)이었다.

공자는 오늘날 학문적으로 추앙받고 있지만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이다. 노나라 관직에 몸을 담아 조정 대신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러나 많은 귀족들과의 의견 충돌로 음해를 받았다. 인(仁)을 바탕으로 하는 공자의 이상적인 도덕정치는 당시 세속에 물든 기성세력으로부터 배척됐다. 개혁세력의 공자는 수구세력의 정적이었던 셈이다.

노나라 조정에서 물러난 공자는 천하를 누비며 자신의 도덕정치를 펼칠 임금을 찾았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더러는 옥에 갇히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공자가 학문적으로 대성한 것은 정치인으로서는 실패하고 고향에 돌아온 말년이다. 그의 고향 취푸(曲阜)는 산둥성 남부의 소도시로 사수(泗水)가 흐르는 곳이다. 일흔셋에 세상을 떠난 공자는 일흔살에 고향에 돌아와 제자들을 다시 모아 후학들을 길렀다.

비록 정치가로서는 실패했지만 후학 양성엔 성공한 공자의 생애는 오늘날에도 교육의 중요함이 얼마나 큰가를 말해준다.
지난 24일 용인 태성고등학교에 공자학당이 문을 열었다. 공자학당은 중국 정부에서 공인한 국내 최초의 교육기관으로서 다양한 중국어 교육 콘텐츠 지원, 중국어 교사 양성 및 연수, 중국어 교재 개발 및 출판, 중국 대학과의 교과 과정 교류, 각종 경시대회 개최 등 체계적인 프로그램이 진행될 예정이라고 한다. 윤문덕 공자학당 이사장이 개원사에서 밝혔듯이 공자학당이 양국 교육과 문화 교류의 전진기지가 될 수 있길 바란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