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0월 23일부터 최무장 연천선사박물관 관장이 집필해온 인기칼럼 ‘최무장의 고고학 산책’이 지난 12월 2일자로서 대미를 장식했습니다. 이에 최 관장은 ‘고고학 산책’의 후기로 오늘부터 매주 화요일 우리나라 고고학발달사를 10여 차례 개략적으로 기술,애독자 여러분에게 고고학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도와 줄 것입니다. 애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과 관심을 부탁드립니다. <편집자 주>

1996년 출판된 영국 캠브리지 대학의 ‘그림 있는 고고학사(Illustrated History Archaeology, edited by Paul G. Bahn)’의 13페이지에 보면, “한국의 남동쪽에서 1748년에 지방 장(local governor)의 아버지가 고려시대(918~1392년)로부터 이어져온 자기 조상의 잃어버린 무덤을 찾기 위해 6기의 옛 무덤을 발굴했다.”고 기술돼 있다. 이러한 예가 한반도 최초의 무덤 발굴 예다.

또한 이 책의 33페이지에 최초의 ‘지게’ 제작 사용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삼한(三韓, Samhan) 시기의 남쪽 한반도(Southern Korea peninsula), 마한(馬韓 Mahan)의 젊은 사람들은 나무 장대(Wood rods)에 구멍을 뚫은 것을 그들의 등에 메고 그것들을 새끼 줄(straw rope)로 어깨에 잡아매었다. 그들은 등에 장대를 메고 온종일 일을 했다. 이것은 나무로 만든 등에 지고 다니는 지게(the wooden A-frame back-racks)로서 오늘날 한국의 모든 농부(farmers)들이 밭(fields)에서 일을 하면서 물건을 옮기는 데 사용하고 있다.” 즉, 지게는 우리 한민족 전통적 작품으로 모든 ‘짐’들을 이동하는 도구다.

상기한 책 175페이지에 따르면, 일본은 1907년에 교도대학(Kyoto University)에서 고고학(Archaeology)의 강의가 시작되고, 1913년에 하마다 고사구(Hamada Kosaku)의 지도 하에 고고학과(Department of Archaeology)가 신설됐다. 그리고 1917년에 일본어로 된 최초의 고고학 교재가 출판됐다.

상기한 책 178페이지에 보면 “1910년 한반도가 일본의 식민지가 되면서 ‘한국 과거사에 대한 등불이 켜졌다(enlighten the ‘backward’ Koreans)”라고 기록됐다.

또한 이 책 178페이지의 중간에 ‘아시아(Asia)에 있어서 식민지 고고학(Colonial Archaeology)’은 유럽국가만의 독점물이 아니고 일본의 왕실정부에도 적용됐다. 일본 도쿄대학(Tokyo University)의 인류학자(anthropology) 도리이 류조(Torii Ryuzo)는 당나귀를 타고 대륙과 대만(Twaiwan)을 수차례 조사 다니고, 한국은 20차례 이상을 조사 다녔다. 특히 그는 지상에 노출된 ‘서 있는 기념물(Standing monuments)’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그는 또 동남아시아의 사원(temples), 지석묘, 원형흙무덤(mounded tombs), 흙제품(토제품, earth works)에 깊은 관심을 가졌으며 한반도(Korea peninsula)의 지석묘를 조사했다. 도리이(Torii)는 처음에 한반도의 지석묘를 두(Two) 유형(types)으로 분류했다. 하나는 남쪽의 것으로 작은 돌이 받쳐진(지석, supported) 둥근돌(boulders, 상석)이며, 다른 하나는 북쪽의 것으로 높은 판석(high stone slabs)으로 받쳐진 책상형돌(table stone)이다.

그는 또한 지역적인 신앙(local belief)으로 한국 서남쪽에 입석(立石, menhil)이 있으며, 이것은 지석묘(dolmens)와 같은 시기의 기념물로 보았다. 이것들은 현재에도 그 주위의 사람들에 있어서 하나의 신(god)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또한 숭배 물(worship)로 돼 있다. 사람들이 병이 나거나(sickness) 또는 어려움이 발생시(troubles) 그것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으로 돼 있다라고 해석됐다.

상기한 책 259페이지에는 “1910~1945년 일본의 식민지 하에서 일본인들은 한사군(漢四郡)의 한 곳인 평양 남쪽의 낙랑(樂浪, Leliang, 기원전 108~기원후 220년)과 경주의 많은 신라(新羅) 왕 무덤(Silla kingdom tombs, 기원 300~668년) 등을 발굴,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벨 무덤(tomb of the Gold Bell)이다.”라고 기술돼 있다.

상기한 책의 321페이지에는 또 “1973~75년 사이에 경주의 신라시대(300~668년)의 신라 왕실 무덤을 발굴, 즉 황남동(Hwang-nang)의 큰 무덤(Great tomb) 발굴이다. 소위 천마총(Tomb of the Heavenly horse)이라는 명칭은 실로 연결시킨 자작나무 위에 진흙을 바르고 그 위에 날으는 말이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죽은 자는 금제 왕관, 금제 장식과 옥제 장식을 하고 있었다.”고 기술돼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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