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순석/작가

“안녕하세요, 저 은진(가명)이에요.”
“어이구 오래간만이네. 우리 이쁜이가 전화를 다하고 웬일이냐?”
“저녁 대접해드리려구요. 저 취직했어요.”
“취직? 아니 너 아직 학생이잖아.”
“학교 그만 두고 요리사 자격증 따가지고 취직했어요. 집안 사정도 있고 해서요.”

‘집안 사정’이라는 말에 약간의 물기가 배어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은진이가 1학년 때 내가 담임을 했다. 농사를 짓는 부모 밑에서 넉넉하지는 않지만 별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본인이 공부에 흥미가 없어 실업계를 지원했고 명랑 활달한 성격에 놀기를 좋아했다. 여느 여고생처럼 좋아하는 유명 연예인의 사진을 가방이며 필통과 책, 심지어는 신발에까지 다닥다닥 빈틈없이 붙이고 다니는 지극히 평범한 여학생이었다. 그러나 3학년이 되어서 생각이 바뀌었다. 우리 사회에서는 대학을 나와야 어디가서 행세를 할 수 있다고 하면서 대학 진학을 고집했다. 당시 3학년 담임도 좋은 직장을 알아봐주겠다고 했고 나도 진학을 재고해 보도록 권유했지만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은진이는 본인 희망대로 지방 소재 어느 대학에 진학했다. 그리고 입학 1년 만에 자퇴를 하고 취업을 한 것이다.
“휴학을 한 것이 아니고 완전히 학교를 그만둔 거야?”  “네.”
대답은 간단했지만 여운을 남기고 고개를 숙이는 얼굴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입학을 하고 어찌어찌해서 겨우 한 학기는 마쳤다고 했다. 그런데 아무리 공부를 해도 교수의 강의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고 동급생들과도 전공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도무지 낄 수가 없다고 한다. 낙제 과목도 생기고 해서 결국 1년을 마치고는 과감하게 진로를 다시 수정했다고 말하는 은진이의 목소리는 다시 생기에 차 있었다.

교직에 있다 보면 수많은 ‘은진이’를 만나게 된다. 교사의 행복은 보람에 있다. 제자가 잘 돼서 원하는 길에 안착했을 때 본인 못지않게 교사들도 기쁨을 느낀다. 그러나 모든 제자가 다 그렇게 안착할 수는 없다. 시행착오를 겪게 되는 제자들 또한 그만큼 많다. 이왕 그렇게 된 바에야 그 방황의 시간이 짧으면 짧을수록 본인은 물론 모두에게도 좋다. 시행착오란 것이 좋게 보면 그 출발점을 의욕으로 볼 수 있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면 지나친 욕심일 수도 있다. 즉, 과욕을 부리지 않으면 시행착오를 겪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그 방황의 잘못을 본인에게만 씌울 수 있을까. 학력 격차가 연봉에서부터 승진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암초처럼 걸림돌로 작용하는 사회에서 낮은 학력에 만족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학력이 사람의 모든 것을 평가하는 잣대가 된다면 잔인한 사회다. 지금은 누구나 원하면 실력과 무관하게 대학을 갈 수 있다. 그러나 졸업 후 갈 곳이 마땅치 않다. 이미 눈높이가 달라져 있는 것이다. 이것은 곧 고학력 인플레로 사회문제가 된다. 악순환의 연속이다.
며칠 후 전화가 왔다. 이번엔 시원스러운 남자 목소리다. 내가 중학교 3학년 담임을 할 때 학생이었다. 성적이 학급에서 중간 정도하는 했는데 실업계 자동차과를 지원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나는 다짐을 받아두기 위해 일부러 반대로 이야기를 했었다. ‘너 정도 성적이면 인문계 고등학교를 지원해서 마음잡고 열심히 하면 수도권 대학은 갈 수도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단호했다. 결국 그는 자동차과를 지원했다. 자격증을 7개나 따고는 군제대 후 지금은 결혼도 하고 잘 나가는 중소기업의 중역으로 있다. 날도 을씨년스러운데 약주나 한 잔 대접하겠다고 전화한 것이다. 외출 준비를 하는데 뉴스가 시작됐다. “경기악화로 올해 청년 실업자수가 역대 최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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