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제(金順濟) 교수는 어떤 분인가. 이 분은 1980년에 박준교·양진모 교수와 함께 무려 1천255곡이나 되는 경기도 지방의 전래동요를 발굴, 녹음했다. 이 중 791곡을 채보했고 다시 64곡을 엄선해 『구전동요의 음악적 분석 연구』논문(인천교대 논문집 11집)에 실었다.

이에 앞서 1977년에는 박준교·양진모 교수와 함께 『어린이의 놀이와 노래에 대한 조사 연구』(인천교대 논문집 8집)를 필두로 귀중한 음악 사료를 후대에 남겼다. 실로 이 땅에 살고 있는 어린이들의 주옥같은 노래를 집대성한 한국인의, 한국인에 의한, 한국인을 위한 음악 문화의 정체성의 보고(寶庫)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뿐만 아니다. 1973년에는 『우리나라 동·서·남해 지방 뱃노래의 비교 연구(1)』를, 1975년에 『우리나라 동·서·남해 지방의 뱃노래의 비교 연구(2)』를, 그리고 1976년에는 우리나라 동·서·남해 지방 뱃노래의 비교 연구(3)』를 발표했다. (1)은 뱃노래의 음악적 특성을, (2)와 (3)은 각각 충남 이북 해안과 충남 이남 서해안을 중심으로 한 뱃노래들이다. 이 뱃노래들은 단독으로 발굴·녹음·채보해 작성된 논문들이다.

〈구전동요〉와 《한국의 뱃노래》 모두 이 분의 노력이 아니었으면 지금은 모두 사멸되고 없어질 뻔 했던 귀중한 음악 사료다. 이 분의 노력으로 지금도 문서로 보관돼 후세에 전해지고 있는 무형의 음악 문화재로서 손색없는 역작이요, 소중한 소리 문화의 금자탑임에 틀림없다. 〈국악대사전〉의 저자 장사훈은 《한국의 뱃노래》의 권두사에서 김 교수가 서해·남해·동해의 뱃노래를 1천500여 곡이나 수집 정리했고, 이 중 155곡을 정선해 교창 형식, 음계 구성, 리듬의 소재 등으로 나누어 정리했다는 말로 그 업적을 찬양하고 있다. 어찌 이 분뿐이랴.
주목해야 할 사실 하나가 더 있다. 이 분이 바로 우리 고장 인천 출신의 음악학자라는 점이다. 우리 고장 출신에 의해 우리나라 뱃노래가 집대성됐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 크다. 인천사람들이여, 자부심을 가져라. 만약 이 분이 아니었더라면 한국인의 내면의 소리, 얼의 소리, 소재와 작품의 손색없는 예술혼의 소리, 차별화된 한국인의 소리가 흐르는 바람에 흩어졌을 것이고 부서지는 파도를 따라 흔적도 없이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 분이 흘린 눈물은 그래서 여느 사람과 같을 수 없다. 이 분의 눈물에는 의미심장한 그 무엇이 담겨 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분이 흘린 눈물은 감격의 눈물이라고…. 감격은 느낌 없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느낌은 진한 감동의 소산이기도 하다. 이 분의 눈물은 느낌의 눈물이요, 진한 감동의 눈물이었다. 이 눈물들이 모아져 감격의 눈물로 승화된 것이다. 우리것은 저리도 좋은 것이라는 감동 말이다.

회한의 눈물이기도 했으리. ‘저렇게 좋은 소리를 왜 그토록 짓밟고 폄하한단 말인가.’ 서양음악에게 외면당하고, 서양음악에게 멸시당하고, 서양음악에게 천시 받은 국악. 해묵은 음악, 퀴퀴하고 냄새나는 음악, 귀신이 나올 것 같은 음악이라고 능멸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이 수업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광경이라니…. 아이들이 좋아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고, 아이들과 흥을 나눌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우리의 국악임을 확인하는 순간, 그 회한은 저 멀리 떠나가고 희망의 눈물이 돼 노교수의 뺨을 타고 흘러 내렸던 것이다.

김 교수는 지금껏 생존하셔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계신 것으로 안다. 피눈물의 각고 끝에 건져낸 순수 혈통의 동요와 한국의 뱃노래를 녹음한 테이프를 고스란히 소장하고 계실 것이다. 노 교수의 뜻을 받들 수 있는 방안을 속히 물색하고 제자들과 문화재단, 나아가 지역 언론이 나서 가칭 「김순제-한국의 뱃노래」 공간을 만들어 헌수했으면 한다. 테이프가 손상되기 전에, 무엇보다도 건강을 잃으시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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