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지열 변호사
 지난 5일 전국 25개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의 정시모집 합격자가 발표됐다. 올해 처음으로 시행된 로스쿨의 입학전형은 8월 실시된 법학적성시험 LEET(언어 이해와 추리 논증)성적, 지원자 학부 성적, 외국어 능력 시험 성적, 사회 활동 및 봉사활동 경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학생들을 선발했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합격자의 대부분은 연령상으로는 20대 중·후반이고, 학부 학점은 4.0점대 안팎이라고 한다. 또 하나의 정량 평가요소인 공인 영어 성적인 토익 시험점수는 800점대 중·후반에서 900점대 초·중반까지의 점수대가 가장 많이 분포하고, 텝스 점수도 대부분 800점을 넘는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예상했던 것보다는 학부에서의 전공이 법학이 아닌 다른 전공 출신자, 즉 비법학사가 대거 합격을 했고 로스쿨에 따라서는 비법학사의 비율이 최대 85%에 달할 정도로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정량적 평가 기준만으로 합격자들의 우수성 여부를 판단한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될 수 있지만 일응 법률시장 개방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다양한 학문을 경험한 상당한 수준의 인재들이 법률전문가로서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함으로 인해 국민들이 양질의 다양한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날도 멀지 않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과거 정권에서 전격적으로 로스쿨 제도의 시행을 결정하고 로스쿨 설립을 인가하는 과정에서 법과대학이 있는 전국의 여러 대학이 경합했지만, 적합성 및 우수성이 고려되지 않은 채 모호한 기준으로 지방에 대한 배려 및 지역 간 균형이라는 미명 아래 각 지방에 학교와 인원을 배분하는 형식으로 로스쿨의 설립이 인가됐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합격자 발표결과가 과연 지방배분이라는 당초의 목적에 부합하는가 하는 의문이 생긴다. 즉 이번에 발표된 합격자들의 출신에 대해 분석한 결과 지방 로스쿨 합격자의 대부분이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채워진 반면, 수도권 로스쿨 합격자 중 지방 대학 출신은 거의 전무한 것으로 나타났다. 구체적인 수치는 충남대 로스쿨 합격자의 71%가 수도권 대학 출신이며, 부산대는 63%, 경북대 73%, 전북대 74%, 영남대 71%, 전남대 68%다. 서울지역 로스쿨 역시 합격자 중 다수가 자기 대학 출신이거나 수도권 대학 출신으로 서울대 로스쿨 정원 150명 중 무려 100명이 서울대 출신이고, 서강대 출신이 40명인 가운데 KAIST 출신 1명을 제외하고는 지방대 출신이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수도권 대학 학생들이 지방대 로스쿨을 차지한 것이다. 자유경쟁체제에서 실력 있는 수도권 대학 출신이 지방대 로스쿨에 입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하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로스쿨을 전국의 지방 대학에 나눠 설치해 ‘지역의 균형적 발전’을 꾀하려 한다는 당초의 정책목표를 무색케 하는 것이다.

지방배분으로 인해 억울하게 로스쿨 선정에서 탈락했다고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서울지역 대학도 있는데, 이렇게 수도권 대학 출신이 대거 지방 대학 로스쿨에 입학할 것이라면 의도적으로 로스쿨을 지방배분을 하기보다는 차라리 엄격한 기준에 따라 로스쿨을 선정하는 것이 옳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시행 초기이므로 속단하기는 어려우나 로스쿨 간에 전문분야가 다르거나 특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성적으로 서열화 된 상태이므로 로스쿨에 입학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의 성적에 맞추어 보다 상대적으로 약한 지방 대학 로스쿨을 선택하게 되고 그 결과 상대적으로 우수한 수도권 대학 출신들이 지방 로스쿨을 대거 차지하게 돼 지금과 같은 입학 전형으로는 이러한 결과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이는 로스쿨 제도 시행의 본래의 의미 자체가 흐려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기존의 고시 체제의 병폐를 그대로 유지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이뿐만 아니라 수도권 대학 출신의 대부분은 지방 대학 로스쿨을 졸업한 후에 수도권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지방 로스쿨이 수도권 출신의 우수 인재들에게 들인 공은 허사가 될 수도 있다.

물론 자유경쟁의 원칙상 수도권 대학 출신 학생들이 지방의 로스쿨에 지원하는 데 있어서 불이익을 받아서는 안 되겠지만, 지방 대학 출신의 학생들이 해당지역 로스쿨에 일정 비율 이상 진학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지역 할당제 시행 등의 보완책을 통해서라도 애초의 지역배분의 취지를 살리는 것이 필요하리라고 본다. 어쨌든 현재로서는 로스쿨 선정과정에서 고려됐던 지역 인재 육성과 균형 발전이라는 취지에는 크게 어긋나 있다. 각 지방의 로스쿨이 그 지역 인재들을 육성해 법조계를 이끌어 갈 동량지재(棟梁之材)로 만드는 것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는 게 문제 해결의 첫걸음이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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