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준호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대응을 위해 지난달 세계 20개국(G20)에 의한 긴급정상회담이 개최됐다. 여기서도 ‘금융당국이 리스크를 적절하게 평가·제어하지 못하고, 금융 기술혁신에 대해서도 제대로 따라가지 못했다’며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에 대한 비판이 제기됐고, 또 규제의 틀 외에 존재하는 금융기관, 금융상품,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의 필요성이 강조됐다. 즉 1980년대 이후 주요국 정상회담에서 이른바 ‘금융’에 대한 대대적인 규제가 거론됐던 것은 처음이다. 이 대목에서 보면, 세계금융위기로 인해 주요국들이 시장근본주의에 대해 비판적 문제의식을 가지게 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번 G20에서는 금융에 대한 규제를 사적재산의 존중, 자유로운 무역 및 투자, 경쟁적 시장, 효율적이고도 효과적으로 규제된 금융시스템 등과 같은 자유시장 원칙을 기반으로 할 경우에만 성공하는 것으로 간주함으로써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국제적 대응을 위기의 원흉인 신자유주의의 틀 내에서 구상하는 데 그치고 말았다. 위기에 대한 근본적 처방은 이루어지지 않고 이른바 ‘대증요법’만이 제시된 것이다. 이는 폐병환자에게 근본적인 치료는 하지 않고 기침약만 주는 것과 마찬가지인 셈이다.
세계금융위기가 표면적으로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대출의 파탄을 계기로 발발했다. 그러나 그 근원은 글로벌 자본주의가 집요하게 추진해온 금융규제완화 또는 금융주도형 경제시스템 그 자체에 있다. 서브프라임 대출 이 외에도 1980년대 이후의 금융주도형 경제시스템에는 위험천만의 금융상품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AIG를 구제하는 데도 그들이 대량으로 발행해온 CDS의 규모를 알지 못해 소요되는 자금과 시간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G20이 행동계획으로 제시한 ‘복잡한 금융상품의 의무적 공개’의 경우, 매매의 당사자인 금융기관 자신이 ‘복잡한 금융상품’의 범위와 규모를 제대로 확정할 수 없는 상황 하에서는 아무런 실효성이 없다. 채권 증권화시장만 해도 이런 상황인데, 금융위기의 영향이 파급되고 있는 주식시장 및 외환시장에 대해서도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국제적 투기자본이 판을 치는 공간을 없애고 또 이들에 대한 전면적인 규제를 가할 것을 고려하지 않는 G20의 제안으로는 세계금융위기의 파급과 그 재발을 절대로 막을 수 없다.     
이렇듯 G20이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적인 처방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지금도 계속해서 신자유주의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G20 개최 직전에 부시는 ‘금융위기는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신자유주의적 금융시스템에 대한 근본적 통제에 철저히 저항할 것을 표명했다. 그러나 세계금융위기의 근본적 원인은 부시가 선두에 서서 집요하게 추진해온 신자유주의 노선 하에서 형성된 ‘자금의 잉여 문제’다. 대기업과 부유층에 대한 감세, 규제완화와 공기업 민영화, 저임금노동 및 비정규직과 같은 불안정 고용의 증대는 대량의 잉여자금을 초래했다. 이로 인해, 갈 곳을 잃은 잉여자금은 짧은 시간에 한탕 건질 수 있는 금융시장으로 유입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금융위기를 촉발하는 계기가 됐던 것이다.
따라서 금융시장에 대한 국제적 규제 강화, 특히 투기를 목적으로 하는 거래에 대한 중과세와 금융시장에서의 이익에 대한 과세 강화 등 먼저 글로벌 금융자본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 그리고 누진세율의 강화, 비정규직 등의 불안정 고용의 대폭 축소, 군사비 삭감 및 사회보장의 충실, 공적부문의 확충 등으로 ‘자금의 잉여 상태’를 해소, 서민·노동자 등의 사회적 약자에게 부를 이전시켜 그들의 구매력을 높여 나가는 것만이 세계금융위기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될 것이다. 즉 금융위기를 구실로 제기되고 있는 불안정 고용을 철폐하고 군사비 삭감 및 대기업·부유층에 대한 과세 강화로 의료·복지·교육의 확충을 요구해나가는 것만이 유일한 답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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