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본 교과서에서 전래동요의 비중이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자취를 감춘 것은 정본 교과서에서의 복원 여부와 상관없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국악교육으로는 음악교육의 대안이 될 수 없다는 그런 분위기도 아니었고, 국악교육의 흐름을 바꿀 만한 혁명적 상황도 없었다. 그런데 왜 이런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을까. 근대화 이후 시나브로 쟁취한 국악교육의 중흥이 어찌해서 이렇게 쉽게, 아니 처참하게 무너질 수 있었단 말인가.
이런 사태가 발생하게 된 배경을 두고 그냥 지나칠 수만은 없을 것 같다. 명쾌한 진단을 통해 손에 잡힐 정도의 해법을 이끌어 내지 않는다면 이 같은 사태는 진정되기 어려울 것 같다. 이 책임을 연구 개발팀이나 교육당국에만 물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국악교육에 조그만 열정을 가진 사람이라면 우선 그 원인을 국악계의 내면에서 찾는 성찰이 필요할 것 같다. 문제의 진원지가 밖에 있을 때가 있지만 더러는 안에 있을 때도 많기에 하는 말이다. 안에서 곪는 게 사실은 더 큰 문제다. 진지하게 돌아보고 잘못을 찾아 자성하고 사건의 전말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 양식 있는 자들이 취할 자세가 아닐까.
그랬다. 심었으면 잘 키웠어야 했고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했다. 수분은 적절했는지, 시비는 제때 이루어졌는지 살폈어야 했다. 이만하면 됐다고 안분지족했다면 자기도취 내지는 자기기만이 아니었을까. 남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나도 먼 당신이었다는 생각이 들기에 하는 말이다.

일선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전래동요를 지도한다는 것이 버거웠다고 해야 옳다. 아니 버거웠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할지 몰라서 허둥대기 일쑤였고, 돛대가 부러진 것도 모른 채 망망대해에서 삿대질만 하고 있었던 꼴이다. 이런 아픔에 국악교육계가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졌나. 정녕 애정 어린 어루만짐이 있었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없이 뜬구름 위에서 방황하고 있을 일선 교사들의 전래동요에 대한 거부감을 알고는 있었는가. 애끓는 국악 초보생들의 울부짖음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였던가. 목말라 애쓰는 이들의 갈증 해소를 위해 한모금의 물을 가져다주려는 진지한 노력을 했던가. 또한 그토록 많은 국악 관련 학회들은 현장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해 얼마만큼의 관심을 가졌던가.
이 물음에 흔쾌한 답변을 할 수 없다면 이 사건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는 자명하다고 할 것이다. 오늘의 현실을 두고 냉철한 자기비판도 필요하다. 뭐가 그리 어려우냐고 반문해서도 안 되고, 우리 것이 좋고 쉬운 것이니 가르쳐야 하지 않겠느냐는 항변도 별 의미가 없다. 대안 없는 현실 비판은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것과 한가지여서 그렇다. 나도 동료교사들에게 그런 지적을 수없이 들었고, 이런 아픔 때문에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현장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라는 질문의 답에 목말라하고 있다. 가르칠 ‘거리’에 대한 갈증인 것이다. 그렇다. 이 ‘꺼리(?)’를 찾아 주는 노력이 구체화돼야 한다. 꺼리(재료)를 주지 않고 음식을 만들어 달라는 주문은 만들지 말라는 말과 다를 바 없다. 가르칠 꺼리가 없는 전래동요는 교과서에 실려서도 안 되고 실을 수도 없다. 왜냐하면 꺼리를 모르는 교단의 선생님들이 이를 허용치 않기 때문이다.
음악의 꺼리는 보통 일곱 가지를 꼽는다. 리듬·가락·화음·형식·빠르기·셈여림·음색 등이다. 리듬의 꺼리를 예로 들겠다. 리듬을 가르치자니 손에 잡히는 것이 없고, 박자를 가르치자니 8분음 6박자만 있을 뿐이다. 서양음악에 있는 꺼리들을 국악에서는 도무지 찾을 수 없으니 허둥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음악적 꺼리는 그렇다고 치자. 노랫말엔 생뚱한 낱말까지 있으니 도무지 의미 전달이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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