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의숙/수필가

 겨울이 점점 무르익어 가는 요즈음
뜨끈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느긋한 시간이다.

붉은 노을이 길게 산자락을 넘어 갈 때쯤이면 다관에 향긋한 가을향을 담아본다.

산과 들을 정신없이 훑어 다니며 따 내었던 샛노란 산국이 이리 향기가 좋을 줄이야...
돈만 주면 쉽게 살 수 있는 국화차라지만 특별한 차를 만들고파 시간을 쪼갰던 지난 정성이 오늘의 몸과 마음을 행복케 한다.

얼마 전,
섬진강변과 지리산 쪽을 여행 할 기회가 있었다.

일행 중 유난히 토종음식을 좋아하는 미식가 선배가 이 고장요리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에 구례쪽 시장 근처에서 재첩요리로 술상을 벌였다.

시골장날에 민물고동. 즉 우리 토종 다슬기를 비싼 값으로 구해 어려운 요리를 해 먹었노라고 자랑삼던 이야기에 그 식당주인이 묻는다.

-요즘은, 여그도 다슬기가 잘 안 나와요. 끓여 잡순 국 색깔이 어쩝디여?
그 선배는 자랑스레 말했다.
-아이고, 아주 푸른 색깔였어요. 얼마나 파란지...
주인은 피식 웃으며
-고것은 중국산이구만요. 우리 것은 푸르시름 허구만. 중국산은 아조 퍼렇단 말이요.
선배는 떨떠름하게 말했다.
-강에서 직접 잡았다고 하던데요.
-말 마시오. 창피한 얘긴데, 중국수입을 가져다가 강바닥을 정리하여 쏟아 부은 다음 여그 사람들이 들어가 직접 줍는다 말이요. 그렇게 해서 TV에도 나간당께. 긍께, 지나가던 관광객들도 직접 강에서 잡아 올린 것을 봉께, 믿어 부러요. 진짜 토종을 눈앞에서 잡응께, 비싸도 사지라우.
아….
우리는 서로를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

어쩌란 말이냐?
아무리 어려운 세상이라지만,
내나라 안에서 내국민이 돈 몇푼 더 벌자고 먹을 것을 가지고 이런 사기극을 벌이다니. 또 그 사기극이 공공연한 비밀이란다.

수입 먹을거리에 대한 성토가 시작됐다.

수입산 송이버섯을 산지에서조차 국산으로 둔갑시켜 파는 일은 거의 다 아는 일이란다. 모양 좋은 수입송이를 산 속 솔잎 속에 묻었다가 캐어 나온다 했다. 1kg에 수입금액이 사천~오천 원 하는 것을 올해는 가뭄이 들어 송이가 귀해지니 kg당 50만 원 이상을 호가했다고 한다.

내 부모형제가 아닌 다음에야 누굴 믿을 수 있을까?
어디 수입식품만 그러랴.
창원 근처에서 생산되는 얼음골사과는 그 맛과 향이 뛰어나 꽤 비싼 값에 팔리곤 한단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너도 나도 타 지역에서 생산된 사과를 가져다 얼음골 현지에서 생산된 것처럼 판매한단다.

비싼 가격으로….
나 하나 배부르자고 선량한 내 이웃을 속이고도 그들은 자식에게 어떤 양심을 물려줄까..
사람이 살아가는 기본원칙, 양심을 져버리고 살아가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

지난 가을,
산과 들을 헤매어 많은 산국을 채취해 잘 손질하고, 여린 불에 한 김만 올려 살짝 쪄낸 후 그늘에서 정성껏 말려낸 야생 국화차!
내가 속임 받지 않기를 소망하고, 내가 이웃 속임이 없었나를 반성하면서 주변의 지인들과 한 봉지씩 나누어야겠다. 코를 감싸는 향기가 그들의 가슴속까지도 따뜻하게 퍼지기를 기도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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