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성심 고양시 덕양구 세무과장

 관심있는 직원들은 봤겠지만 시장실 한쪽엔 흙색바탕의 경기도기가 꽂혀 있다. 그 기는 경기도 세정과에서 도내 지자체를 대상으로 세정운영 평가를 실시하고 최우수 시·군에 수여하기 위해 수십 년 전에 제작한 것으로 고양시장실로 오게 된 자초지종은 다음과 같다.

주지하듯 1992년 2월 1일은 고양군 전체가 고양시로 승격된 날이다. 5개 읍·1개 면·1개 출장소에서 정규직 98명이 지방세 부과징수업무를 분리 담당하던 업무분량을 시로 승격되면서는 정규직 71명이 감원된 27명의 업무를 떠맡게 돼 세무과는 날벼락 맞은 처지가 됐다. 게다가 사무실이 부족해 세무과는 덕양보건소 옆 빌딩에 세를 살았는데 1개과가 3개층에 분산돼 민원인과 직원들의 불편과 불만이 심했다.
궁하면 통한다 했던가. 무언가 타개책이 있어야 했다. 그래서 전산 문외한이 지방세 전산에 눈을 돌리게 됐다. 국내에 있는 지방세 프로그램 개발 업체를 수소문해 5개사의 프로그램을 시연한 후 그 중 한 회계법인의 프로그램을 도입키로 했다. 현재 우리시 지방세 과징 프로그램 개발업체이자 유지보수 업체 대표가 2명의 직원과 함께 원당소재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10여 일간 작업 끝에 예정대로 1993년 정기분 면허세를 전산프로그램에 의해 고지했다. 그 후 민원인이 몰리는 취득세와 등록세를 전산화 했고 1993년 하반기에는 지방세 17개 전 세목을 전산화해 시 승격 후 줄어든 인력 등으로 열악해진 근무환경을 보전하는 초석을 놓았다.

그러나 그 당시의 지방세 프로그램은 부과(고지) 후 수납처리는 별도로 수기로 입력해야 해 연간 수십만 건의 이르는 영수필통지서의 수납사항을 일일이 키보드를 두들겨 수납일자를 일정기간 안에 입력해야만 납부사실이 확정되고 그래야 체납 자료로 이관되지 않아 당시 30여 명의 일용직 여직원들은 팔목이 아파 테니스 칠 때 사용하는 팔목보호대를 착용하고 근무했다. 그래서 어떡하든 자동으로 소인처리(Reading)가 돼야 했다. 그러나 나름대로는 열심히 방안을 찾았으나 좀체 묘안은 없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모 지방일간지에서 구독료 납부 지로 청구서가 날아 왔다. 평소 같으면 거들떠 보기 싫은 그 구독료 청구서가 그날은 구세주처럼 보였다. 부리나케 신문사로 지로 수납에 대해 문의하고, 답변대로 금융결재원으로 전화 하니 지방세도 지자체와 금결원 간 계약하면 지로로 수납처리가 가능하나 건당 얼마(35원?)의 수납처리비를 부담하란다. 당시 연간 고지서 발급건수가 체납세 독촉장을 포함해 오륙십만 건이였는데 그 중 징수율이 평균 96%였다. 그러면 처리수수료가 연간 2천만 원에 이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생돈 주는 것 같아 이 기회에 그 기계를 구입하는 게 장기적으론 예산절감 등으로 시에 득이 될 것으로 판단, 리더기 판매회사를 수소문했다. 그러는 과정에서 당시 세무과에서 사용 중인 프린터기로 출력하는 고지서로는 OCR기로 읽기가 안 되고 읽기를 할 수 있는 세계 공통 글자체로 인쇄되는 프린터기 구입이 선행돼야 함을 알게 됐다. 이거야말로 갈수록 태산이다. 무엇보다도 기천만 원의 예산을 투입해 잘 되지 않으면 예산낭비란 비난과 생각조차 싫은 징계였다. 더욱이 전국 최초로 도입하는 사업이니 만큼 선례가 없으니 잘 되리란 확신 또한 없어 중도 포기할까 하는 갈등이 심했다.

여하튼 수소문 끝에 OCR기와 Red Printer(고속프린터기)를 구입해 자동화된 시스템으로 우리시 자체적으로 지방세를 부과·징수·집계할 수 있는 완벽한 체계를 구축했다. 1993년 11월에 전산실을 새로 마련하고 각종 전산장비를 완비한 후 조촐하게 전산실 개소식을 가졌다. 그 후 언론에 이 시스템이 보도돼 전국 각지에서 견학을 왔다. 더욱이 1993년도 경기도 세정운영 평가에서 우리시가 최우수상의 영예를 차지하게 됐다.

그 후 1994년 7월경 인천시와 부천시에서 세무비리(세도사건)가 불거져 나왔고 그 해를 비롯해 몇년간 경기도 세정운영 평가는 중단돼 잠복기에 접어들었고 그런 연유로 경기도 세정 최우수기는 매년 최우수 자치단체를 떠도는 고단한 유랑생활을 마감하고 우리시에 정착(?)하게 됐다.
인천, 부천 세도사건 덕분에 세상은 발칵 뒤집혔고, 급기야 감사원에선 전국 세무과를 뒤지기 시작했으며 우리시도 예외는 아니어서 1994년 12월부터 40여일간 감사관 20여 명(추가투입인원 포함)에게 집중 감사를 받았다. 그러나 감사원의 기대(?)와는 달리 단 한 건의 비리도 없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고양시 세무업무를 담당했던 일원으로서 커다란 자부심과 긍지를 느낀다. 또한 매일 감사관의 숙제를 하느라 밤 12시 이전엔 퇴근한 적이 없고, 매일 아침에 정보계통에서 출근 안 한 자(비리로 도망간 자)를 살피던 살벌한 시절에 같이 고생한 직원들에게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이 기회에 다시 한 번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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