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학계의 연구현황은 1970년에 이르러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개설서로서 김용간 「조선의 구석기시대」(1984), 서국태 「조선의 신석기시대」(1986), 림영규 「조선의 청동기시대」(1984)와 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인류진화 발전사」(1986) 등이 있다. 북한의 고고학 잡지로서는 「조선고고연구」, 「문화유산」과 「고고민속」등이 있다. 북한학자의 대표적 고고학 개설서 1권은 도유호 「조선원시고고학」(1960, 과학원출판사)이고, 다른 1권은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조선고고학개요」(1977) 등이다.

한국고고학 발달사에 가장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분은 전 서울대 교수 김원룡(金元龍) 선생이시다.

이 분은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신 후 1947년 당시 국립박물관의 개관을 준비한 곳에 가셔서 자원으로 일을 할 것을 제의하시고 그 요구가 받아들여지면서 1961년 서울대학교에 고고인류학과가 창립돼 교수가 될 때까지 국립박물관에서 일을 하셨다.
김원룡 교수님은 식민지사관의 이론을 새로운 한국적 이론으로 기초를 세우신 분이다. 이 분은 1947년부터 1993년까지 하루도 쉬시지 않고 고고학 공부를 하셨으며 그간 많은 저서의 집필과 조사, 그리고 발굴을 하셨다.

김 교수님의 대표적 저서는 한국 최초의 「한국고고학개설」서의 집필이다. 1978년 2판, 1986년 3판이 출판됐으며, 1996년 9월에는 3판이 11번째 발행됐다. 이 개설서에는 선사시대의 구석기, 신석기, 청동기와 철기시대, 그리고 역사시대로서 고구려, 백제, 고신라 및 가야와 통일신라까지 정리를 하셔서 한국고고학의 기초를 확립시키셨다.

김원룡 교수의 저서는 상기 「한국고고학개설」서 외에 「신라토기의 연구」, 「울림도」, 「한국미의 탐구」, 「한국미술사」, 「한국의고분」, 「삼불암수상록」, 「한국문화의 기원」, 「한국고고학연구」, 「청동기시대와 그 문화」, 「나의 인생 나의 학문」 등이다.

상술한 바와 같이 북한은 공산주의 이론에 의한 고고학 이론을 바탕으로 한국문화를 연구하고, 남한은 일본적 식민지사관(史觀)으로부터 벗어나 고고학이라는 새로운 이론을 정착시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신 분이 김원룡 교수이시다.
고고학 조사(발굴)결과는 역사적 자료 바탕 위에 동반된 지질학, 고생물학, 식물학 등 자연과학적 자료와 더불어 유적 성격이 해석되기 때문에 공산주의라는 특수한 이론만으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자연의 산물이다. 사람들에게 주어진 환경은 인간이 머물고 있는 지리적 위치, 그 위치에 주어진 기후, 또한 그 주어진 기후하의 동·식물의 번성과 주어진 환경에 거주하는 인간의 사고세계와 제작된 도구 등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고고학 발굴에서 확인된 예로서 주거지(집자리), 무덤, 무덤 속의 부장품, 주어진 환경의 동·식물의 시대와 당시의 계절에 따라서 모두 다르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고고학은 인문계통과 자연과학이 종합된 학문이기 때문에 기본은 순수한 자연과학적 측면에서 해석해야 된다고 본다. 북한 학자들이 주장하는 청동기시대, 기원전 2천 년경 고조선, 그리고 단군왕검 등은 고고학적 실물자료로서 제시된 유물이 1점도 없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김원룡 교수께서는 상기한 난제들을 서서히 정리, 정돈하셔서 오늘날 한국고고학계의 기반을 세우신 분이다. 한 예로 1978년 동두천에 근무하던 미군병사가 한탄강가 전곡리에서 주먹도끼 몇 점을 채집해 서울대학교에 기증했으며 이를 계기로 김 교수께서 전곡리 유적 발굴팀을 구성, 4개 대학 팀이 1979년부터 발굴을 실시했으며, 그 결과 동북아시아에서 최초의 진정한 주먹도끼(handaxe)문화 유적을 찾게 됐다.

다른 학문도 마찬가지겠지만 고고학자는 천직(vocation)으로 자기의 학문을 생각할 때 훌륭한 업적을 남길 수 있는 것이다. 고고학자들이 무덤 속에서 찾은 유물이 옛날의 영혼(l'ame)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들의 언어를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된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인간생활의 조건은 몇천 년이 지나도 크게 변하지 않는다. 비록 문명이 잉태되고 원자무기시대(l'ere atomique)가 도래됐지만 인간 자체는 그대로 남아 있다. 예로 예수탄생 2천 년이 됐지만 현인의 변화는 거의 없다. 1천 년 정도는 어제라고 볼 수 있다. 고고학적 연구는 인간의 가장 순수한 길(le chemin de la modestie)을 찾는 것이다. 다만 그것들은 제한이 없고 연구한 것이 돼 짧은 순간만이 접촉(만남, 발견된 유적과 유물)할 수 있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다음은 ‘고고학이론’이 계속될 예정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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